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조국 사태' 등에서 보이듯 이제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는 확증 편향과 분노의 재생산, 가짜 뉴스의 배양장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무기로 떠올랐다. 인류의 소통 방식을 바꿔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영국 등에서도 무참히 깨지고 있다.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민주주의의 건전한 공론을 가로막는 흉기로 떠오른 역설의 원인을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저의 불찰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2018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연신 사과의 말을 이어갔다. 평소 트레이드마크처럼 입던 반팔 회색 티셔츠 대신 다소 커 보이는 드레스셔츠와 양복을 입고 앉은 저커버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저커버그는 그날 그 자리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페이스북은 보안과 개인 정보 관리를 많이 개선했다. 하지만 1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페이스북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오히려 커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전체로 이어지고 있다. SNS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짧은 SNS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2004), 유튜브(2005), 트위터(2006) 등 SNS를 대표하는 선두 주자들은 대부분 2000년대 중반에 세상에 나왔고, 뒤이어 등장한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모바일 세상에서 활짝 피어났다. 특히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민주화 열풍이 불었던 '아랍의 봄' 때는 많은 사람이 SNS가 인류의 소통 방식을 바꾸어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세상을 바꿀 도구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환영받던 SNS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소리를 듣기까지는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이민자와 소수민족에 대한 증오와 공격 뒤에는 SNS가 있었고, 과거와 달리 SNS에서는 사람들이 합의를 도출하기보다는 이슈를 두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극단으로 나뉘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16년에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와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의 대선이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투표가 유독 충격적이었던 것은 투표 직전까지 나왔던 여론조사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여론조사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사회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소통 방식을 사용하는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뒤에는 SNS를 이용한 러시아의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러시아가 사용한 방법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러시아는 단순하게 트럼프를 찬양하거나 힐러리를 비난하는 포스트를 페이스북에 뿌린 것이 아니다. 러시아 공작팀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각 집단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흥분할 수 있는 내용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퍼뜨렸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는 이민자들이 미국에 몰려들어 범죄를 저지른다는 가짜 뉴스를, 젊은 흑인들에게는 백인 경찰들의 차별적 행동을 강조하는 교묘한 가짜 뉴스를 집중적으로 뿌리는 식이었다. 각 유권자 그룹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대립하면 트럼프가 당선된다는 치밀한 계산하에 이루어진 작전이었다.

러시아의 공작이 알려진 후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단속하고 외부 공작 세력을 차단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짜 뉴스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팩트 체크 결과가 '대체로 진실' '일부 거짓' '대체로 거짓'처럼 나오는 이유도 논란이 되는 이슈가 100% 진실, 혹은 거짓이라고 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SNS와 인간 본연의 특성이었다. SNS는 사람들이 서비스에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내야 수익이 증가하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좋아하고 박수 칠 만한 내용만을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만 주위에 남게 되는 '메아리방' 효과가 나타난다.

미국에서 각종 정치 이슈에 대해 진보(파란 점)와 보수(빨간 점) 성향의 트위터 사용자들이 의견 교류 현황을 분석한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제이 밴 배블 교수팀의 연구 결과. 트위터 사용자들 대다수가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그룹 내에서 대화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SNS에서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예일대학교의 몰리 크로켓 같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SNS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쉽게 끄는 것은 '도덕적 분노(moral outrage)'를 일으키는 내용이다. SNS 사용자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포스트를 좋아하기를 바라고, SNS의 알고리즘은 더 많은 클릭과 공유를 유도한다. 그런데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분노, 나쁜 사람이 성공하거나 권력을 잡는다는 분노만큼 클릭과 공유를 끌어내기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튜브도 예외가 아니어서 추천 영상을 계속 누르다보면 점점 더 극단적인 견해를 이야기하는 영상으로 이동하게 된다. 알고리즘이 사용자들이 좋아할 콘텐츠를 추천하다보면, 상호 이해와 합의를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는 것이다. SNS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다는 우려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SNS 사용자들에게 '평소 내가 가진 견해에 일치하는 주장을 담고 있고, 나의 (도덕적) 분노를 일으키는 내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특정 세력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경우 공략하는 지점이 거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충고다. 어쩌면 SNS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페북에 "두테르테가 태양계 최고 대통령, 美NASA 발표" 뜨자… 많은 필리핀인들이 믿더라]

가짜 뉴스 정의 쉽지 않은 이유

미국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 조사에 착수한 다음 날인 지난 달 25일,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내용을 지적하며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가정보국 조셉 매과이어 국장이 탄핵 조사를 유발하게 된 사안에 관련해서 "의회에서 자유롭게 증언할 수 없다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낸 걸까, 아니면 당사자가 말을 바꾼 걸까?

트럼프의 비난에 워싱턴포스트는 매과이어 국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알려준, 믿을 만한 사람의 말을 옮긴 것이므로 오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전달한 사람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언론계의 관례다. 그렇다면 이런 사안에서 신문사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 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기자들은 검찰이 동원되어 조사해도 출처를 말하지 않고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워싱턴포스트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짜 뉴스라고 믿을 뿐이다.

지난 2016년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미 항공우주국(NASA)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태양계 최고의 지도자라고 발표했다’는 내용의 사진.

소셜미디어로 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몇 년 전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가 "미 항공우주국(NASA)이 두테르테가 태양계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발표했다"는 내용을 나사의 기자회견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일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장난이었고 소셜미디어에서 흔히 있는, 그저 웃고 넘길 농담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포스트 밑에 달린 댓글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 얘기를 사실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건 그냥 농담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댓글로 큰 논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그 포스트 작성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순수하게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을까, 아니면 많은 필리핀 사람이 믿을 것을 알고 만든 의도된 가짜 뉴스일까? 우리는 그의 대답을 신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