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이하원 특파원

8년 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을 2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약 1000개의 대형 원통 탱크였다. 멀리서 볼 때는 셀 수 없이 많은 드럼통이 마치 줄 맞춰서 사열을 준비 중인 것처럼 보였다. 이 탱크에 최근 '해양 방출' 여부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처리수(방사능 오염수에서 상당수 핵 물질을 제거한 물)'가 보관돼 있었다.

2011년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고 발생 후 높이 10~15m, 저장 용량 700~2000t의 탱크가 차곡차곡 들어서기 시작했다. 매일 150t의 오염수가 생산돼 현재 116만t 의 처리수가 장기 보관돼 있다.

이날 외국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한 도쿄전력 마쓰모토 준이치(松本純一) 폐로추진실장은 "2022년이면 현재 처리수를 저장하는 탱크가 '만땅(가득 채운 상태)'이 되지만 현 시점에서 새로운 탱크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조만간 오염수 처리 방안을 어떤 식으로든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오염수 처리 방안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정부가 최종 결정하면 따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현장 시찰과 브리핑에서 해양 방출, 수증기 방출, 지하 매립 등의 6가지 방안 중에서 해양 방출을 적극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전력은 위험 시설로 지정된 오염수 처리 공정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잠실체육관만 한 오염수 처리 시설에 들어갈 때는 혹시 있을지 모를 피폭(被曝)에 대비해 방재복, 방재 마스크, 방재 장화를 착용한 것은 물론 장갑 3켤레, 양말 3켤레를 신고 들어가야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 있는 대형 원통 탱크 앞에서 본지 이하원(맨 왼쪽) 특파원이 2일 도쿄전력 관계자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약 1000개가 있는 이 원통 탱크에는 방사능 오염수에서 상당수 핵 물질을 제거한 처리수가 보관돼 있다.

오염수 처리는 현재 해체 작업 중인 원자로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원통 게이트를 차례로 거치게 하면서 3단계로 필터링을 하는 구조로 돼 있었다. 게이트 사이사이에 방사능이 어느 정도 제거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전자 장비와 계측기가 복잡하게 설치돼 있었다. 도쿄전력은 이런 절차를 거쳐도 방사능 물질인 트리튬(삼중수소)이 제거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여러 실험 결과를 제시하면서 인체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도쿄전력 '리스크 커뮤니케이터' 오야마 가즈요시(大山勝義)는 "트리튬은 인체에 큰 해가 없다. 인체에 들어가면 대부분 방출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도쿄전력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후쿠시마현의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 오나하마(小名浜)의 저인망 어업협동조합 마에다 히사시(前田久) 경리부 차장은 "트리튬이라는 물질을 바다에 방출하는 이미지는 소비자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후쿠시마현 수산해양연구센터의 가미야마 교우이치(神山亨一) 방사능연구부장도 "도쿄전력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해양 방출될 경우, 후쿠시마산 생선이 팔리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최근 지역 신문 '후쿠시마민보(民報)' 여론조사에서 '트리튬 해양 방출'에 대해서 반대 38%, 찬성 30%였다.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양 방출을 이웃 국가의 국민이 이해하고 동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외면적으로는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다. 최악의 연쇄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1·2·3호기의 100m 앞까지 갔을 때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방사선량 측정기는 0.02mSv(밀리시버트)를 기록했다. 서울~뉴욕 왕복 비행기를 탑승할 때 발생하는 방사선량 0.19mSv보다 낮은 수치였다.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의 97%는 평상 작업복을 입고 다녀도 될 정도다.

문제는 여전히 초기 작업에 머무는 원자로 해체 작업이다. 폭발 사고가 있었던 원자로에서는 사고 직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방사능이 나오고 있어 일반인에게는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원자로의 해체 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앞으로 30~4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도 완전 정상화까지는 험난한 일정이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