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연·2019 신춘문예 시 당선자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놀라고, 제주가 고향인 것의 소감 같은 걸 묻는다. 그래서 한 번은 소감 대신 우리 집 앞바다에서 돌고래가 뛰는 걸 봤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고향이 제주인 사람의 장난 정도로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은 건, 그 일이 믿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때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일은 믿기지 않으니까.

그 후 제주 바다의 돌고래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돌고래의 종, 개체 수, 경로까지 알려주던 글 말미에는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숨은 명소까지 소개돼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요트 체험이 관광 상품으로 나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 목격담을 믿어준다. 대신 내 집 앞바다는 신비로운 제주의 어느 곳이 아니라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사진 명소가 돼 버렸다.

우리는 종종 신비함이나 아름다움을 사실 확인의 대상으로 바꾸려 한다. 그냥 아름답거나 신비로운 것은 거짓이나 환상이 되고, 확실히 우리의 두 눈과 손으로 보고 만져서 입증하면 사실이 된다. 슬픔도 비슷하다. 슬픔 그 자체보다 '사건'을 생각한다. 정확한 수치를 믿고, 그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따지고 분석하고자 한다. 물론 그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저 아름답고 그저 슬픈 것만으로는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의미도, 전말도 없는 그저 아름답거나 슬픈 일.

사람들이 내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목적지에 가다가 우연히 들른 곳, 혹은 아는 곳인데 이번엔 노을이 질 때 그들은 그곳, 그 시간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했다. 어쩌면 그건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없는, 잠시, 잠깐, 어떤 순간에 아름다운 것. 우리를 붙잡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늘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렇듯 모호하지만 분명 매혹적인 순간과 감정들을 그냥 그 자체로 둘 때도 있었으면 한다. 그저 느낌적인 느낌으로 남아도 충분한 감정들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