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고용 세습' 논란을 부른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들의 '친인척 채용 비리' 의혹이 감사원 감사 결과로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징계 처분을 받은 무기계약 직원들을 아무런 심사 없이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서울시의 '무기계약직 제로(0)화 정책'이 졸속 추진된 사실도 드러났다.

30일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일부 직원은 2016년 식당조리원, 미화원 등 위탁 업체 직원을 본사 직원으로 전환할 것이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이를 친인척 채용에 이용했다. 이들은 업체 노조 등에 청탁해 간단한 면접 절차도 없이 친인척을 해당 업체에 취직시켰다. 이렇게 채용된 친인척 5명 전원이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정규직)이 됐고, 작년 3월 무기계약직 제로화 정책에 따라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서울교통공사에선 기간제(비정규직) 근로자 채용도 여러 차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내부 공모로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 직원들은 채용 심사위원에게 자신들의 친인척과 지인 등을 추천하고 간단한 면접만 보게 해 전원 합격시켰다. 이렇게 채용된 기간제 근로자 45명은 작년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을 포함해 서울교통공사가 작년 서울시 정책에 따라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한 무기계약직은 총 1285명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근무 태만 등으로 징계를 받거나 입사 과정에 비리가 있는 무기계약직도 아무 검증 절차 없이 일반직으로 전환됐다.

이 밖에도 서울교통공사는 근무 경력 3년 미만의 무기계약직 1012명을 '7급보'로 전환한 뒤 이들에게 변별력 없는 시험을 치르게 해줬다. 응시자의 93.6%가 합격해 7급으로 승진했다. 공사는 노조의 요구로 승진 시험 미응시자들에게도 규정에 없는 재시험 기회를 줘 승진을 도운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서울교통공사는 이렇게 '무더기 승진' 등으로 생긴 결원도 신규로 공개·경쟁 채용을 하지 않고 퇴직자를 기간제로 충원해 일반 국민의 채용 기회를 박탈했다"고 지적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협력사 직원들 가운데 부당하게 채용된 직원들을 별도의 조사 절차 없이 본사 정규직으로 전원 전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공사 임직원의 친인척 44명은 외부 공모 절차 없이 '밀실 채용'으로 공사 또는 협력사 직원으로 취직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선 직원이 2017년 4월 기간제·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 채용 시 면접위원으로 참여해 자기 동생에게 최고점을 부여하는 등의 부당 사례가 5건 적발됐다.

감사원은 서울교통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 5개 공공기관 임직원 29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거나 수사 참고 자료로 통보했다. 중징계 요구 대상은 서울교통공사 5명, 한국토지주택공사 2명 등 7명이었다. 경징계 요구 대상은 서울교통공사 4명, 서울시 1명, 한국토지주택공사 1명, 한전KPS주식회사 11명 등 17명이었다.

이번 조사로 5개 기관의 정규직 전환자 3048명 가운데 10.9%(333명)가 재직자와 4촌 이내 친인척 관계로 확인됐다. '고용 세습'이 의심되는 대목이지만 이번 감사에서 전모를 확인하진 못했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일반직 전환자 1285명 중 14.9%(192명)가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였다. 나머지 4개 기관의 경우 정규직 전환 완료자 가운데 재직자 친인척 비율이 인천국제공항공사 33.3%(2명), 한국토지주택공사 6.9%(93명), 한전KPS주식회사 16.3%(39명), 한국산업인력공단 4.3%(7명)였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집행하고 연내에 범정부 공공기관 채용 실태 3차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날 감사 결과에 대해 "정부의 노력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채용 비리 문제는 단기간의 노력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정부 임기 내내 채용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할 것"이라며 "앞으로 실시될 공공기관 채용 비리 실태 점검이 더욱 면밀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