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근씨가 지난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회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해외로 도피했다가 21년만에 붙잡힌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가 법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정씨 측은 다만 "정태수 회장 등 공범들이 더 주도적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은 2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재산국외 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정씨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정씨 측은 이날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앞서 3차례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지 않은 정씨는 이날 연녹색 수의를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부가 "검찰이 진술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 맞냐"는 질문에 정씨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어 재판부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정씨는 "변호인한테 일임하겠다"고 했다.

다만 정씨의 변호인은 "정씨가 주도적으로 범행을 한 게 아니라 정태수 회장과 그의 지시를 받들었던 공범들이 더 주도적이었다"며 "정씨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해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1997년 자신이 실소유주인 동아시아가스가 갖고 있던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900만주를 5790만 달러에 매각하고도 2520만 달러에 매각한 것처럼 꾸며 한화 320억여원 상당을 횡령하고 해외에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