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뉴욕에서는 월마트 온라인몰에서 그레이트밸류 우유 3.8L(1갤런)를 2.19달러(약 2593원)에 주문할 수 있다. 서울 이마트에선 서울우유 2.3L(0.6갤런)를 5950원에 판매한다. L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한국 우유(2587원)가 미국(682원)보다 3.8배 비싼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처음으로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0.04%)를 기록하며 '저물가 경고등'이 켜졌다. 불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물가가 하락하며 경제 활력이 떨어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국가·도시 비교 통계사이트 '넘베오(Numbeo)'가 전 세계 376개 주요 도시의 식료품 물가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여섯째로 비싼 곳으로 조사됐다.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뉴욕·도쿄·오슬로보다 우유·소고기·감자 같은 식료품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세계적으로 높은데, 왜 저물가를 우려하는 상황이 빚어졌을까?
◇식료품, 세계에서 여섯째 비싼 서울
넘베오는 지난 18개월 동안 우유 1L, 식빵 500g, 닭가슴살 1㎏, 사과 1㎏ 등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19개 상품의 소매 가격을 수집했다. 서울의 경우 299명이 조사한 가격 정보 2077건을 토대로 평균 가격을 산출했다.
넘베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서울보다 식료품 값이 비싼 도시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스위스 5개 도시뿐이었다. 서울의 장바구니 물가는 미국 뉴욕(7위)과 워싱턴DC(8위)도 앞질렀다. 국제도시인 도쿄(15위), 홍콩(24위), 파리(27위), 싱가포르(53위), 런던(120위), 상하이(135위)도 서울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서울의 바나나·토마토·감자 값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오렌지·사과 값은 세계 2위, 소고기(홍두깨살)는 세계 3위였다. 양파·상추(5위), 치즈(6위), 우유(7위) 가격도 높았다. 뉴욕의 장바구니 물가는 서울보다 5.6% 저렴했고, 도쿄는 17.2%, 런던은 47.2%, 파리는 26.5% 저렴했다. 세계에서 식료품 물가가 가장 비싼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쌀·우유·사과·바나나·오렌지·토마토·감자·양파 값은 서울보다 쌌다.
◇생산 원가 높고 유통 단계도 많아
서울의 식료품 가격이 비싼 것은 구조적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육류와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을 기업형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한다.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상품은 이웃 국가에서 적극 수입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소규모 농장 중심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병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농가 1호당 면적이 185㏊나 되는데 우리나라는 1.5㏊밖에 안 된다"고 했다.
유통 단계도 한국은 많은 편이다. 외국은 기업형 농장이 곧장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여전히 도매상들이 신선식품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
◇정부 발표 물가와 체감 물가의 괴리
정부가 발표한 공식 물가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체감 물가는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1%를 기록했다. 정부 공식 소비자물가와 소비자 체감물가 상승률의 격차는 2.1%포인트로 2013년 10월(2.1%) 이후 거의 6년 만에 가장 컸다. 이는 소비자들이 빈번하게 소비하는 식료품 물가가 여전히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들여다보면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진 품목이 많다는 점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가 낮다고 보긴 어렵다"며 "더구나 불황으로 소득이 늘지 않아 물가가 떨어졌다고 느끼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넘베오(Numbeo)
2009년 설립된 세계 최대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로 도시·국가 간 생활 물가 및 범죄·안전·환경오염·교통 지수 등을 비교·분석한 자료를 제공한다. 생활 물가 항목의 경우 9100여개 도시 562만건의 가격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보를 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