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이달 하순 뉴욕 방문 계획 발표로 한·일 정상의 유엔총회 동반 참석이 확정됐다. 하지만 양국 정상회담은 이번에도 불투명하다. 지난 11일 우익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아베 내각은 대한(對韓) 정책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사(강제징용)와 수출 규제 문제로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상회담도 1년째 열리지 않으면서 한·일 갈등이 '고착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北에 집중하겠다는 靑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5일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를 다 해결하려는 자리라기보다는 선택된 일정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에 집중한다고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보다는 미·북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한·일 정상이 '만남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만큼 이번에도 회담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양국 갈등이 더욱 격화된 가운데 지난 6월 말 오사카 G20 회의 당시 '8초 악수' 같은 장면조차 안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조우(遭遇) 형식의 약식 회담도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양국 정상회담은 작년 9월 유엔총회 때 뉴욕에서 열린 것이 마지막이다. 다음 달 22일 열릴 일왕 즉위식에도 문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일본을 한국의 수출 절차 우대국(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 고시를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외교 당국 간 채널은 계속 열어두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유엔 총회 기간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했다.

아베 "먼지만큼도 안 바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는 23일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과 뉴욕에서 최소 사흘간 함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내에서도 양국 정상회담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일 갈등을 촉발·증폭시킨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관한 강경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일 개각 후 기자회견에서 대(對)한국 외교정책에 관해 "새로운 체제에서도 먼지만큼도 안 바뀐다"며 "(문재인 정부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신임 외무상은 "한국이 양국 청구권 협정을 명확히 위반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시정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지난 12일 "(과거 한·일) 교섭 과정에서 재산, 청구권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으로 됐다"고 했다.

최근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문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아베 총리에게 정상회담을 하자고 할 수 없다"며 "두 정상이 만나서 잘되지 않으면 그다음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측 입장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으로선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교토 정상회담 실패가 이듬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이어진 기억 탓에 (정상회담 추진에) 더 신중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