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진행 중인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온라인 설문 중 일부.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제도 재검토' 지시에 따라 교육부가 입시 개편 논의에 착수한 가운데 전국 교육감 모임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전국 고교 교사들을 상대로 '대입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설문 조사에 나섰다. 협의회 산하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이 지난달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시작해 추석 전까지 약 3주간 진행할 예정인데, 설문 내용, 조사 방식 등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전교조 등이 반대하는 정시(수능) 확대를 막기 위해 설문 조사를 통해 여론전(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은 "설문이 '정시(수학능력시험) 확대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도성 질문으로 채워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면서 "결과적으로 전교조나 좌파 교육감들이 주장해온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수능 축소'를 뒷받침하는 데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도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친(親)전교조·좌파 성향이다.

"설문 편향되고 공정성 의문"

연구단이 제시한 설문은 총 13개다. '수능이 현재 교육과정 취지를 평가하는 데 적절한가' '현재 교육부 주도로 결정되는 대입 정책의 논의 주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등이다. 교육계에서는 "좌파 교육감들이 대입 제도 개편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이런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설문 응답 시 교사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실상 아무나 설문에 답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논란이다. 통상 교원 대상 설문에는 교사 인증을 거친 뒤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설문에 답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번 설문은 교사 신분 확인 장치가 없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특정 세력이 단체로 거짓으로 응답할 경우 이를 걸러낼 장치가 없다"면서 "설문 조사의 생명은 공정성과 객관성인데 이렇게 되면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까지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교육감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작년 9월 전교조 출신 박종훈 경남교육감을 단장으로 '대입 제도 개선 연구단'을 출범시키고 현재 중1 학생이 치를 '2025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직접 내놓겠다고 했다. 당시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골자로 하는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내놓은 상태였는데, 교육감들이 그와 다른 입시안을 만들겠다고 움직인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안 그래도 대입 제도가 수시로 바뀌는데 교육감들까지 입시를 바꾸겠다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구단은 전국 고교 교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 등을 토대로 오는 11월 말쯤 2025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최근 공정성 논란이 거센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교육감들도 대입 개편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감들의 월권이라고 지적한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는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감들이 대입 개편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라면서 "교육감들은 공교육 정상화와 학교장 권한 인정 등 산적한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대입 제도가 고교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교육부뿐 아니라 교육감들도 대입 개편 과정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라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은 지나친 우려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교육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발표한 담화문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학 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데 대해 "신속하게 개혁안을 내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교육부는 "개혁안 마련을 위해 교육 관련 단체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교조 등이 대입 제도 개편을 당·정·청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에 대해 '밀실 협의'라고 비난하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전교조 등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