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워싱턴지국장

한·미 동맹이 요즘처럼 원색적으로 부딪치는 장면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전엔 갈등이 있어도 겉모양새는 '외교적으로' 갖췄다. 막후에서, 물밑에서 해결해 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 그런데 최근 한·미가 주고받은 일련의 언사엔 그런 절제가 없다.

지난 22일 청와대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결정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거의 매일 새로운 수사(修辭)로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시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연장하라는 것이다. 한국 역시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불러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한 관리는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지 말라는 한국 요구에 또 실망하게 된다"고 비꼬았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한·미가 전례 없이 강 대(對) 강으로 대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당장 동맹을 해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목표는 한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에서 튕겨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은 한국이 지소미아를 유지하도록 최대한 압박하고 또 한편으론 일본을 설득해서 한·일을 대화 테이블에 앉혀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의 와해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란 세 명의 지도자가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 때문이다. 앤드루 김 전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지난 2월 스탠퍼드 대학교 연설에서 지난해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 등 북핵 해결을 위한 새로운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그 시점에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이란 세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 개의 별이 한 줄로 늘어서는 순간" 그런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 라인업은 지금은 동력을 잃어 북핵 해결에선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신 교묘하게 한·미 동맹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문재인·김정은 라인업은 각각 다른 이유로 한·미 동맹을 묶고 있는 끈을 느슨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워 게임'이라며 중단시켰고 언젠가는 주한 미군도 철수하고 싶다고 했다. 한·미 군사훈련 폐지를 요구해온 김정은도 원하던 바였다.

5배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트럼프는 동맹이 미국 안보에 기여한다는 데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미국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용인하면서 이미 한국과는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 일본과의 정보 공유 끈을 끊고 한·미·일 군사 정보 공유 체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어떤 이유로든 동맹 간에 '분리(decoupling)'가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은 징후"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한·미 동맹은 늘 어려웠고 항상 위기였다. 그럼에도 위기감이 이대로 해체돼 버리지 않을까 하는 수준까지 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한·미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음색이 다르다.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당하면 미국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고 같이 싸울까.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쉽게 답하지 못한다.

동맹이 쉽게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도전을 받고 끊임없이 시험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동맹을 묶어주는 다양한 끈과 신뢰가 약화되면 결국 무력해지는 날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