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전격 파기한 데 대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실망했다(disappointed)"고 했다. 국무부는 별도 논평에서 "미국은 문재인 정부에 이 결정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며, 동북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안보 도전과 관련해 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고 거듭 분명히 말해왔다"고 했다. 미 국방부도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미국이 동맹국에 대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쓰며 공개 비판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고 지칭한 것이다. '왜 한국이라고 하지 않고 문 정부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것은 문 정부가 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엔 문 정부가 전통적 동맹 한국이 걸어왔던 기본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지금 문 정부의 행동이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지 않고 있다는 암시도 깔려 있을 수 있다. 특히 '문 정부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표현은 목숨을 걸고 상대를 지키겠다는 동맹국 사이에서 쓰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문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이다. 물밑에서는 더 심한 말이 나왔을 것이다.

문 정권 출범 후부터 삐걱대던 한·미 동맹은 이제 본격적인 파열음을 내는 지경까지 왔다. 이번에도 미국은 안보 보좌관, 국방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차례차례 방한해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 북한의 핵·미사일 공동 견제에 중요하다"며 '지소미아 유지' 입장을 전했고 주한 미 대사는 마지막으로 못 박듯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을 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3각 안보 축으로 동북아 안보를 챙기려는 미 전략 구상의 핵심이다. 일본에 보복한다는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카드가 미국을 격앙시키고 한·미 동맹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했다. "한·미·일 3각 공조 체제에서 한국이 사실상 탈퇴를 선언한 것" "한국이 배제된 신(新)애치슨 라인이 그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 비판은 흘려 들을 일이 아니다.

문 정부가 애초 '협정 유지' 쪽에 무게를 뒀던 것도 이런 후폭풍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막판에 돌변한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국 사태'로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다시 재미 봤던 '반일(反日)'로 국면을 바꾸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북한이 반색할 테니 남북 쇼를 다시 벌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안보가 총체적 난국인 이 상황에서 정권이 최후 보루인 한·미 동맹마저 흔든다. 제동장치가 풀린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