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아녜스 바르다가 바게트를 물고 찍은 사람들을 이어 붙인 사진 앞에 서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JR과 함께 작업한 사진이다. 영화 속 바르다는 88세임에도 감각적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도 생생히 기뻐하고, 토라지고, 즐거워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을 바르다는 보여준다.

33세 남자와 88세 여자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33세 남자에게 88세 여자는 말한다. 내 친구 고다르도 선글라스를 벗기 싫어했는데 나를 위해서 한 번인가 벗어줬다고. 그때 고다르도 너처럼 33세였다고. 여기서의 고다르는 장 뤼크 고다르, 고다르가 친구라고 말하는 이는 올해 작고한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다. 33세 남자는 사진가 JR. 이 영화의 제목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이 영화를 이제야 보았다. 그녀가 만들어줄 영화가 더 없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보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마지막 작품은 아니다. 그녀가 죽고 개봉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있다. 하지만 어쩐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마지막 작품처럼 느껴졌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큐멘터리다. 즉석 인화장치가 달린 JR의 포토 트럭을 타고 둘이 프랑스를 누비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찍는 이야기. '시골에 간다'와 '우연에 맡기기'가 둘의 원칙이라면 원칙. 둘의 만남은 JR이 아녜스 바르다를 피사체로 찍으러 오면서 시작됐다. 그 후 JR의 작업실에 가서 바르다는 둘이 같이 영화를 찍어보자고 말한다.

바르다의 나이를 의식하면서 JR이 '88번의 봄을 보냈군요?'라고 부드럽게 묻자 바르다의 응답. "알면 됐어, 그만하게." 바르다가 지긋하게 미소 짓지 않아 좋았다. 고다르와의 '오래된 사이'에 대해 JR이 묻자 바르다는 이렇게 정정한다. '길게 알고 지낸 사이'라고. 나이 든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도. 나는 이런 바르다의 태도가 좋았다. 노년을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8세의 바르다는 자신의 늙음을 감추지 않는다. 눈은 잘 보이지 않고, 계단을 오르려면 힘겹기만 하다. 다리도, 눈도 망가져 가고 있다고 바르다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노년에 대하여'를 쓴 세네카는 노년이 왜 불행한지에 대해 네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째, 비활동이라는 벌을 내린다. 둘째, 육체를 약하게 하고, 병을 증가시키고, 매력을 잃게 한다. 셋째, 감각적 즐거움을 앗아간다. 넷째, 죽음이 다가온다.

세네카의 이 말을 바르다의 경우에 대입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맞는 것: 바르다는 육체가 쇠약해지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똑바로 인지하고 있었다. 틀린 것: 그럼에도 여전히 매력이 있었고, 감각적 즐거움을 느꼈다. 영화의 주제가 '늙음과 노년의 대비'도 아니었고 '노년의 바르다'도 아니었지만, 나는 바르다의 생물학적 나이를 의식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88세에도 저렇게 기뻐하고, 토라지고, 즐거워하고, 눈물짓고, 배움을 신기해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기억하고, 삶의 태도를 바꿀 수도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88세의 바르다가 느끼는 감각의 즐거움을 생생히 전파하는 영화였다. 새로 사귄 친구 JR과 함께 말이다. 무엇보다도 감각적 즐거움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찾아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1단계: JR과 바르다가 X를 본다. 2단계: X에게 당신의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한다. 3단계: X가 JR의 포토트럭에 들어가 사진에 찍힌다. 4단계: 커다랗게 인화된 사진이 나온다. 5단계: X가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6단계: 사진이 된 자신의 얼굴을 X가 보면서 기뻐하는 걸 JR과 바르다가 본다. 7단계: 6단계까지 본 내 얼굴도 기쁨으로 변화한다. 즐거움의 과정은 이런 단계를 거쳐 증폭되는 것 같았다.

처음 그들이 찍은 사진은 바게트를 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게트를 최대한 수평으로 입에 물고 있어 달라는 JR의 주문이 의아하게 느껴졌는데… 인화한 결과물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게트를 물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사진을 나란히 붙였더니, 그들이 동시에 하나의 바게트를 물고 있는 사진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밧줄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바게트를 함께 물고 있었다. 둘의 생각과 장난을 공유한 사람들의 눈빛이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걸, 나는 보았다.

포토 트럭은 또 폐광 지역에 가고, 현대화된 장비를 가진 농부를 찍고, 웨이트리스를, 공장의 노동자들을, 폐허가 된 마을을, 집배원을, 염소 농장주 등을 찍는다. 찍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거대하게 인화한 사진을 그 동네의 건물에 붙이는 게 본격적인 일이다. 무슨 벽돌공이나 미장이처럼 말이다. JR의 팀은 사진을 건물에 붙이기 위해 건물의 특성을 연구하고, 동네의 지형을 고려하고, 비계를 설치하는 일을 한다. 비계에 올라 건물에 사진이 입혀지는 장면을 보면서 놀란 행인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한 게 있었다. 과연 JR이 선글라스를 벗을 건지였다. 벗는다면 언제 벗을 건지도. 어떤 방식으로 벗을 건지도. 처음부터 바르다가 자신을 위해 선글라스를 벗어주었던 고다르를 언급하기도 했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바르다가 선글라스를 벗어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렸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다' '정이 없다'라며 삐지기도 하고. 100세가 된 JR의 할머니를 만나 손주가 할머니 앞에서도 선글라스를 쓰는지 묻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바르다도 알고 있다. 무지개떡처럼 층지게 염색한 바르다의 머리를 '일종의 복장'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JR처럼 '모자에 선글라스'가 JR이 선택한 예술가로서의 외양이라는 것을. 어쨌거나 '선글라스'가 JR의 기호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바르다가 계속해서 선글라스를 벗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데서 발생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고다르의 '국외자들'을 패러디해 루브르 박물관 안을 달리는 신은 정말이지 통쾌했다. 다리가 불편한 바르다를 태운 휠체어를 JR이 밀면서 둘은 거의 날아다녔다. 휠체어에 앉아 바르다는 빠른 속도로 눈동자를 움직이며 고유명사들을 발음한다. 벨리니… 보티첼리… 라파엘로… 바르다의 과거와 바르다의 기억과 바르다가 사랑했던 얼굴들이 지나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르다가 늙어서 갑자기 매력이 생기고, 감각적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게 아니라고. 젊었을 때부터 바르다는 매력적이었고, 감각적 즐거움을 충만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어쩌면 늙음으로 매력과 감각을 꽤나 상실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결과가 이 정도인지도 모르겠다고. 이것이 과연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