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풀벌레들 소리만으로 세상 울린다 그 울림 속에 내가 서 있다 울음소리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지금 득음하고 싶은 것이다 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벌레 소리들 언제 내 속에 들어왔는지 나는 모른다 네가 내 지음(知音)이다 네 소리가 나를 부린 지 오래되었다 시의 판소리여 이제 온전히 소리판이니 누구든 듣고 가라 소리를 듣듯이 울음도 그렇게 듣는 것이다 저 벌레 소리 받아 적으면 반성문 될까 부르고 싶은 절창의 한 소절 될까 소절 소절 내 속에서 울리고 있다 모든 울리는 것들은 여운을 남긴다

―천양희(1942~ )

초록이 조금씩 지쳐 갑니다. 조석으로 바람의 기색이 달라졌습니다. 더위는 힘겨웠습니다. 달력을 보니 벌써 입추(立秋) 지나고 처서(處暑)가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것이 또 있습니다. 풀벌레 소리들입니다. 문득 그 미물들의 울림 속에서 시인은 생각합니다. '전 생애로 절명하듯 울어대는' 네가 진정 시인이구나.

'지음(知音)' 없이 살기는 너무나 외롭습니다. 그러나 외로움 이후에나 풀벌레 울음을 알아듣습니다. 그것들이 '나'의 '지음'이었음도 알아차립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넓고 깊어졌습니다.

친구들도 늘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온전히 소리판’이 되었습니다. 누구든 듣고 가면 됩니다. 그러나 세속의 귀는 그곳에 귀 기울일 리가 없습니다. ‘울림’과 ‘여운’에 어둡습니다. 하지만 진짜는 늘 그 속에 숨어 있게 마련이지요.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초롱초롱 알아듣게 된 풀벌레 소리…. 곁에서 뒤척이는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