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조순형 전 국회의원)가 지난 12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범(서울대 서문학과 교수), 김성철(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준경(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태수(변호사), 손지애(이화여대 초빙교수), 위성락(전 주러시아 대사),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정유신(핀테크지원센터장), 한은형(소설가), 홍승기(인하대 로스쿨 원장) 위원이 참석했다. 김성호(연세대 정외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내왔다.

왼쪽부터 김태수·정유신·김성철·김준경·위성락·손지애 위원, 조순형 위원장, 홍승기·이덕환·한은형·김경범 위원, 차학봉 편집국 부국장.

―최근 한·일 갈등은 해방 이후 양국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이 1965년 한·일 협정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보고 강력히 반발하는 게 이 분쟁의 본질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문제의 핵심을 피해 가려는 경향이 있다. 아베 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라 여기든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으려 하니까 견제한다고 분석하든가, 일본 내 반발이나 국제 여론 등 지엽적 사안을 부각해 우리에게 유리하게 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면 이 사안은 별것 아닌 게 되고, 조금 있으면 소강상태가 되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해결 방안과 관련해서는 특사 파견, 미국의 중재 요청 등을 언급하는데, 아무리 특사를 많이 보내도 새로운 협상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가장 위험한 발상은 65년 체제를 흔들어 전선을 무한정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일본은 물론 미국의 반발을 불러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한·일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태의 본질을 엄중하게 직시하고 추후 파장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 보도해야 한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 조선일보 보도가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부 흔들린 것 같다. 사설과 칼럼 등은 그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는데 이런 기조가 일반 기사에까지 스며들지 않았다. 다른 신문의 무작정 일본 때리기 같은 것에 조선일보는 편승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런 측면을 보일 때가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정부의 반일(反日) 구도에 일관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우리가 일본과 싸울 힘이 있다고 주장하고 여권은 반일 분위기를 조성해 이 구도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조선일보 기사에서 보고 싶은 것은 정부의 프레임이 맞는지 철저한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싸울 힘이 있는지, 산업 경쟁력에서 일본과 견뎌볼 만한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 한·일 양국 모두 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야당마저 반일·친일 문제에 대해 부화뇌동했다. 이런 사태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관된 방향을 견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아베, 끝내 파국으로 몰다〉(8월 3일 A1면) 〈일사천리 일본, 10분 만에 보복 의결… "금수 조치 아니다" 궤변〉(8월 3일 A2면) 〈일본, 무슨 意圖로 미국 동맹국 한국에 宣戰布告하는가〉(8월 3일 오피니언면) 등의 제목을 보면 조선일보가 신중함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번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용어를 조심하고 선을 지키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한·일 사태는 6·25전쟁과 한·미 동맹 체결 이후 가장 심각한 외교 현안이라고 볼 수 있다. 첫 충격이 가라앉고 사태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정론지로서 이 상황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동맹, 산업 전략의 변화, '역사 정치'(정치적 역사 해석)의 오·남용, 동아시아 전후 국제 질서(샌프란시스코 체제) 붕괴, 정경 분리라는 전후 국제 무역 질서의 균열, 포퓰리즘 부상과 민주주의 위기 등이 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이고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병이 되어버린 '정치·외교의 사법화'도 중요 화두로 다루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이제 한·일 갈등 해법에 대해 구체적·현실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1965년 한·일 기본 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준수한다는 뜻을 천명하도록 해야 한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국회에서 비준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헌법 규정상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또 청구권 협정은 50여 년 동안 역대 정부가 준수하며 양국 관계의 정치적·외교적·법적 기반이 됐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이낙연 총리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도 이런 원칙이 나와 있다. 입장문에는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을 부정한 게 아니라, 그 조약을 인정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조약의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했다'고 되어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한·일 관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동의해도, 그 문제하고 대통령이 헌법상 요구되는 한·일 기본 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준수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을 미·중 무역 전쟁과 관련해 분석하면, 이 조치는 국가별 산업·기업의 경쟁력, 특히 공급 체인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의 70% 정도가 중간재이고, 이 중간재의 기초인 소재 등의 90%를 일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런 변화는 대기업은 물론 특히 부품을 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엄청난 충격이다. 산업별 공급 체인 현황 및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른 재구축 방안에 대한 치밀한 분석 및 중장기 대응 방안에 관한 기획 기사가 필요하다.

―〈6살 유튜브 스타의 힘: 구독자 3100만명 이보람양 가족회사, 강남 100억 건물 매입〉(7월 24일 사회면) 〈유튜버 절반이 月150만원 못 벌어, 전업자는 평균 536만원〉(8월 8일 A2면) 기사는 최근 가장 강력한 미디어로 떠오른 유튜브 동향을 담았다. 하지만 유튜버들의 수익 측면을 너무 강조해 아쉬웠다. 유튜브로 월 수십억원을 번 어린아이가 매일 방송에 나오는 게 맞는지, 성공한 유튜브의 비결은 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 최근에는 선정성, 가짜 뉴스, 저작권 문제 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통 미디어가 유튜브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도 분석해야 한다.

―〈자취방서 노트북 켜고 위엔 정장, 밑엔 반바지… 지금 AI면접 중입니다〉(8월 12일 A2면)를 보면 인공지능(AI)이 100여 기업의 취업 면접을 본다고 소개했다. 엄밀히 말하면 AI가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 수준이다. 취업 준비생의 표정, 홍조, 눈동자 움직임, 말하는 속도 및 억양 등을 카메라로 확인해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장된 것이다. 이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대 포장하면 안 된다. 기업으로선 블라인드 채용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취준생에게는 평생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양지혜의 윔블던 러브: 선수는 흰옷, 관중은 정자세… '테니스의 대성당' 윔블던〉(7월 9일 스포츠면) 기사는 테니스를 모르는데도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윔블던을 '테니스의 대성당'이라고 하고, 테니스 경기를 미사에 비유해 소설보다 재미있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스포츠와 연결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北 새 미사일, 수백개 소나기彈 뿌릴 가능성"〉(8월 12일 1면) 기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전문가들 말에 인용부호를 달아 제목으로 달았다. 구체적으로 누가 말했는지조차 밝힐 수 없는 사람 말을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기사 내용에 확신이 있으면 조선일보가 생각하는 내용을 제목으로 달면 된다. 익명 전문가 발언을 인용부호를 써서 큰 제목으로 달면 기사가 충실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