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각) 재선 캠페인 모금행사에서 "한국으로부터 10억달러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내는 게 뉴욕 아파트의 114달러 13센트 월세 받는 것보다 쉬웠다"고 한 발언은 트럼프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성장사가 반영된 발언이기 때문이다.

뉴요커 등 언론들과 뉴욕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트럼프의 조부 프레데릭 트럼프는 16세에 독일에서 뉴욕으로 불법으로 이민해 이발사로 일하다, 서부 금광 개발 광풍이 불 당시 시애틀로 가서 호텔·주점 등을 차려놓고 매춘업을 벌여 밑천을 모은 뒤 뉴욕에 다시 정착했다. 부친 프레드 트럼프는 이를 기반으로 부동산 임대업과 개발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등 가족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남의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못을 주워 재활용하고" "항상 누군가를 비난만 할 뿐 칭찬을 한 적이 없는 킬러"였다고 한다. 트럼프 형제들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우는 애를 안아주면 약해지니까 안아주지 마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장남인 8세 위 형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새로 지은 건물에 끼워넣을 새 창틀을 대량 주문했는데, 아버지가 "중고 창틀을 손질해 넣으면 되지 왜 헛돈을 쓰느냐"고 노발대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형은 이 일을 계기로 가업 승계 경쟁에서 탈락, 알코올중독에 빠져들었으며 1981년 사망했다. 이런 '킬러 수업' 속에서 트럼프도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업가로 성장했고, 뉴욕을 넘어 전국과 외국에 자기 이름을 박은 부동산을 개발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가 월세 수금을 이야기하면서 "13센트를 받는 게 특히 중요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성장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1센트조차 악착같이 챙겼던 그의 사업 이력이 동맹에게조차 철저하게 '돈 문제'를 따지는 행태를 설명해준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 3억달러짜리 사업을 통째로 물려받은 트럼프는 1999년 아버지의 장례식 조사(弔辭)에서 "마침내 최대 경쟁자가 없어졌다.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 뉴욕 부동산 업계에서 내가 더 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날 연설에 앞서 스티븐 로스라는 부동산 거물 주최로 오찬을 겸한 소규모 모금 행사도 열렸는데, 전날부터 로스가 맨해튼 등에서 운영하는 고급 피트니스 프랜차이즈 업체 '이퀴녹스'와 '소울사이클'에선 난리가 났다. 직원들이 "인종주의자 트럼프를 돕지 말라"며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고, 회원들도 잇따라 탈퇴하는 등 불매운동을 벌인 것이다.

이를 두고도 트럼프는 행사에서 "나도 가짜 뉴스나 야당에 당해봐서 아는데, 나라가 증오자들에 의해 분열돼 있다"면서 "로스가 약간 곤란하긴 하겠지만 오래 안 갈 것이다. 로스, '정치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루 만에 트럼프가 모은 후원금은 1300만달러(158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