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미국 대사관 앞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국인들이 장사진을 친다. 미국 입국 비자를 받으려는 인터뷰 행렬이다. 연간 방미(訪美)하는 중국인이 500만명이고 약 40조원을 뿌리지만 미국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대상 38개국에 중국은 없다.
▶한국도 2008년 VWP 가입 전까지 그랬다. 한참 줄을 섰다가 "왜 가느냐" "연봉은 얼마냐" 등의 질문에 웃으며 답해야 여권에 비자가 붙어 나왔다. 번거롭고 까다롭기까지 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정청래 전 의원은 한때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임 전 실장은 '반미(反美)'를 강령으로 삼은 전대협 의장 경력이, 정 전 의원은 '전대협 결사대' 일원으로 미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했던 사실이 문제가 됐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제 미국이 "2011년 3월 이후 방북한 사람의 무비자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한 번이라도 북을 다녀온 우리 국민이 미국을 가려면 중국처럼 미 대사관에서 면접을 해야 한다. 작년 남북 정상회담 수행단으로 방북했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김정은과 사진 찍은 걸 그룹 '레드벨벳' 등도 마찬가지다. 해당자가 3만여명이라고 한다. 상당수는 개성공단 관련자일 것이다. 2016년 공단 폐쇄 전까지 우리 체류자가 하루 1000여명이었다.
▶통일부는 "남북 교류 확대와 충돌 안 한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2008년 관광객 피살 전까지 금강산 관광을 한 우리 국민이 200만명(10년 누적)에 이른다. 연간 미국을 방문하는 국민도 200만명이다. 만약 '금강산 관광'과 '미 무비자 입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평양과 개성공단 등에 가려던 국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관광 대국'을 꿈꾸며 고향 원산과 백두산에 대규모 휴양 시설을 짓고 있다. 금강산 관광으로만 번 돈이 5억달러다. 올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을 다시 열자고 한 것도 원산과 연계한 '관광 벨트'를 조성해 주로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의 일부였다. 유럽 주요국과 일본·대만 등도 미국 VWP 혜택을 받고 있다. 미국이 20개월 넘게 '비자 카드'를 들고 있다가 지금 꺼낸 것은 '실질적 비핵화가 없으면 관광도 없다'는 대북 압박일 수 있다. 만나기만 하면 '금강산·개성공단 재개'를 조르는 한국 정부에 "그만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