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오래된 책을 들추다 본다, 책갈피 속에 숨어 있는 나비 한 마리

어둠을 가르며 얼마나 긴 시간 날아왔을까 은빛 가루 다 떨어진 날개, 느닷없는 햇빛에 눈마저 멀었는지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는다 곤히 접은 날개 살며시 집어 올리자 화들짝 나비 아래 숨었던 또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친다

손바닥에 입술 자국 남기듯 해당화 꽃잎 한 장 올려놓고 간 사랑

얼마나 갔을까 푸른 허공을 향해 빛바랜 나비가 날아오르고 있다

―김영삼(1959~ )

옆구리에 책 끼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서양 책을 ‘패션’으로 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소중한 날의 기념으로 책 안에 주변에서 채취한 꽃잎을, 나뭇잎을 넣어두던 풍습도 있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더욱 그랬습니다. 시간의 물결은 주름을 남긴 채 급속히 지나가고 모든 게 밋밋한 날들이 되어 있을 때 무심히 펼친 옛 책에 ‘해당화’ 꽃이 납작하게 말라 접혀 있습니다. 더듬어 더듬어 이 꽃의 시간을 찾아갑니다. 스물일곱 쪽! 당시 나이의 페이지에 넣어두었던 것! 이 사물은 분명 시간 저편의 하찮은 미라입니다만 기억을 펼치니 금세 나비가 되어 날아오릅니다. ‘집어 올리자 화들짝’ 또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눈 감고 한참 그것들을 봅니다. 바다 빛 푸른 백사장가의 붉게 타던 ‘해당화’의 시간은 지금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같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