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하반기부터 '경미한 학폭', 생기부 기재 않기로
"반성 기회 준다" VS "가해 학생만 좋은 일"
학폭위원 대부분 '엄마들'…주먹구구식 결정 논란도
전문가 "학폭위 처벌 기준 정립부터 제대로"

과학고에 재학 중인 A(17)군은 작년 2학기 도중 친구와 싸움이 붙어 서로 한 대씩 치고받았다. 그런데 다툰 친구가 A군을 학생폭력위원회에 신고했다. 쌍방폭행이 감안돼 처벌수위 중 가장 낮은 ‘1호 처분’이 내려졌다. A군은 "‘학폭(학교폭력)’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순간, 수시 입시에 치명타이기 때문에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며 "그동안 대학 입시를 위해 쏟은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고 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A군처럼 ‘경미한 학교폭력’ 사례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게 된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학교폭력 대응절차 개선방안’이 시행된다고 최근 밝혔다. 교육부는 "가해 학생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법적 분쟁을 줄여 학생 간 관계 회복이 촉진될 수 있도록 경미한 폭력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경미한 폭력’의 기준이 모호하고, 이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학교폭력 가해자에게만 유리한 것 아니냐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학교폭력위원회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완벽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의로 처벌 수위를 낮출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엄마들'이 점수매겨 1~9호 결정…"주먹구구식" 지적도
현재 학폭 대응은 해당 학교가 자체적으로 구성하는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가 하고 있다. 학폭위는 교감을 위원장으로 두고 5~10명 규모로 구성한다. 학폭 위원 중 절반 이상은 학부모가 위촉된다. 학폭 담당 교사와 변호사·판사·의사·경찰(관할 경찰서 소속) 등도 포함할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이 때문에 학폭위 결정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학폭위에 참가한 적 있는 부산의 한 학부모 김모(51)씨는 "학생회 부회장 엄마라는 이유로 뜬금없이 불려 나가 참석했는데, 학폭위원 대부분이 나 같은 엄마들이었다"며 "전문성이 없다 보니 대부분 '인정해라, 그러면 우리가 선처해줄게'란 식으로 진행됐다"고 했다.

학폭위는 피해 사실이 접수되면 가해 당사자와 피해 당사자를 각각 따로 소환해 조사한다. 출석에 불응하면 조사는 서면으로 이뤄진다. 사안에 대해 위원들이 각자 △화해 정도 △반성 정도 △고의성 △지속성 △심각성 등 5개 항목별로 0~4점을 매긴 뒤 이 점수를 종합해 처분을 결정한다.

교육계에 따르면, 생활기록부기부 등재에서 제외될 예정인 1호(서면사과·1~3점)부터 3호(학교봉사·4~6점) 처분은 쌍방 폭행이거나 언어폭행 같은 ‘경미한 사안’일 때 내려진다. 쌍방이었다고 해도 한쪽의 학교폭력 정도가 심하거나, ‘일방 폭행’일 경우에는 무조건 4호 처분(사회봉사·7~9점) 이상이 내려진다고 한다. 5호 전문가 교육이수 또는 심리 치료, 6호 출석정지(10~12점), 7호 학급 교체(13~15점), 8호 전학(16~20점), 9호 퇴학(16~20점) 등이다.

일러스트=정다운

◇"낙인효과 막는다" VS "학폭이 가해자 편"
학교폭력의 생활기록부 기재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대입이나 특목고 입시 등에서 주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경미한 처분을 받아도 기록 그 자체로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끼리 작은 싸움 하나로도 입시 결과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낙인 효과'가 비합리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학생끼리 질투심에 학교폭력을 악용(惡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남 양산의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모(18)군은 "친구 사이에서 흔히 주고받는 욕 같은 경우도 ‘괘씸죄’라며 학폭을 거는 경우도 있다"며 "가장 가벼운 1호 처분을 받아도 생활기록부에 남는다고 해서 억울하고 두려워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조치가 결국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입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잘못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당연한 일인데, 오히려 가해자를 배려한다면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모(18)양은 "가해자 인생을 위해 학폭 기재를 안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모(17)군도 "결국 학폭 가해자들만 좋은 일"이라면서 "가해자들이 엄청 나대고 다니겠다"고 했다 .

지난 1월 30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학교폭력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전문가 "학폭위 처벌 기준 정립부터 제대로"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은 '경미한 처벌'을 생활기록부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인 평가 시스템을 손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전담 법무법인 승운 박상철 변호사는 "유사한 금품갈취 사건에 대해 강제전학(8호)을 매기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학교에서는 출석 정지(6호) 처분이 나오기도 한다. 모든 학교가 엄격한 기준 하에서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차가 발생한다"면서 "'경미한 처분을 제외한다'보다 '그 처분이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또 지금처럼 처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등을 둔다면 소송전만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높은 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 낮은 수준의 처분을 얻기 위해서 소송을 이어갈 것이란 얘기다. 일방폭행을 쌍방폭행처럼 꾸미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사는 "지금도 가해자들이 일방폭행을 해놓고는 처분을 낮추려 쌍방폭행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4~5호를 받은 가해자들이 기록에 남지 않는 3호를 받기 위해 무슨 짓을 못 하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