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김연수 지음|레제|336쪽|1만5000원
동서문학상(2001년), 동인문학상(2003년), 대산문학상(2005년), 황순원문학상(2007년), 이상문학상(2009년). 소설가 김연수(49)의 수상 기록이다. 그것은 소설 창작으로 일군 업적이지만, 김연수는 틈틈이 에세이도 풍성하게 썼다. 처음엔 시인으로 등단했던 그가 젊은 날에 읽은 문장에 대해 쓴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2004년)은 요즘도 문학 청년들이 통과제의(通過祭儀)처럼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힌다. 그 책이 오롯이 청년 김연수의 자화상이었다면, 이번엔 지난 10년 동안 중년을 거치면서 쓴 글을 모아 산문집 '시절일기'를 냈다. 개인의 내면 일기이자 한 시대의 기록이다.
김연수는 세월호 침몰을 중심으로 해석될 지난 10년을 재현하거나 묘사하기보다는, 그 체험을 내면화한 언어로 우리 시대의 명상록을 써냈다. 역사가가 아닌 작가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찌꺼기처럼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러므로 영구히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날마다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우리에게 다시 밤이 찾아올 때까지.'
김연수가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라고 할 때 '다시'는 글쓰기를 통해서 얻는 진정한 삶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는 '첫 번째 삶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두 번째 삶에서는 그 실수로부터 이득을 얻는다'는 소설가 D H 로런스의 말을 인용했다. 두 번째 삶이란 부활이 아니라, 글쓰기를 뜻한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는 것.
김연수는 글쓰기의 원형으로 일기 쓰기를 꼽았다. 일기란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한 뒤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 게 아니니까'라고 했다. 그렇게 폐기된 일기 중 어떤 것은 되살아나 문학이 된다. '나'의 회상에 '우리'의 기억이 가미돼 문학이 되는 것. '우리의 절망은 서로에게 읽힐 수 있다. 문학의 위로는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