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허가를 면제해주는 우방 국가) 배제 조치가 코앞으로 다가온 24일 우리 정부는 제네바, 워싱턴DC, 서울에서 전방위로 일본 압박에 나섰다.
한·일이 정면충돌한 곳은 WTO(세계무역기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였다. 이날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한국 대표인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10분 정도에 걸쳐 일본을 비판했다. 그는 "일본이 WTO 규범에 어긋나는 불공정 행위를 했다"며 "자유무역을 강조해 온 일본이 수출 제한으로 WTO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대표인 이하라 준이치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는 "(수출 제한은) 안보 차원에서 전략물자를 관리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WTO 규범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일본이 훼손했다고 주장하지만 안보상 민감한 상품의 수출은 (자유무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김승호 실장은 이날 오전 회의장에서 일본에서 급파된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외무성 경제국장을 향해 "제네바에서 직접 양자 협의를 해서 (수출 제한 조치를 둘러싼)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이날 오후에도 확답하지 않았다. 김 실장은 "양자 간 직접 대화를 피하는 일본은 자신감과 용기가 결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일본은 수출 규제 사안을 둘러싼 논의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강하게 반박하기보다는 짧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전략을 썼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회원국 전체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주진 않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국제사회에 널리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알리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간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정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 정부 입장을 전하고 미국 측의 중재 노력을 당부했다. 유 본부장은 "최근 2주간 D램 반도체 가격이 23% 인상됐다"며 "일본의 조치가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 글로벌 경제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미국 측 인사들에게 적극 설명하려고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화이트리스트서 한국 배제)에 대한 의견 수렴을 받는 마지막 날인 이날, 일본 정부에 20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기자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조치는 한·일 경제 협력 파트너십과 동북아 안보 협력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했다.
'한국이 최근 3년간 양자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성 장관은 "한국과 일본은 2015년과 2016년에 두 차례 만났고, 지난해 회의는 상호 협의하에 2019년으로 미루기로 했다"며 "일본 정부는 그동안 양국 간 국장급 협의회에서 한국의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에 대해 어떠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캐치올 규제란 민수용 품목 중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일 우려가 있는 품목에 대해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정부는 일본을 WTO에 제소할 방침도 거듭 밝혔다.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제소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가능한 한 신속히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