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관악구 관악사회적경제허브센터 2층 회의실. 외국인 여성 3명이 자국 동화를 한글로 옮긴 초안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글쓰기 강사 김선영씨가 "어린 애들이 보는 책인데 무서운 늑대보다는 친숙한 개가 나오는 게 낫지 않겠어요?"라고 하자, 몽골 출신 졸롱바타르 멀얼게럴(36)씨가 "원본 동화에도 늑대 대신 개라고 표현된 경우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라며 원고를 고쳤다. 졸롱바타르씨는 몽골 전래 동화 '어리석은 영감과 영리한 부하들' 한글판을 쓰는 중이다.
이곳 외국인 여성들은 결혼이주여성들. 올해 5월부터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모국의 전래 동화책 한글판을 만들고 있다. 다문화 전문 사회적 기업 아시안허브가 주관하는 '엄마나라 동화책' 사업을 통해서다.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엄마 나라 문화를 모르고 자라는 게 안타까웠다"며 "엄마 나라 전래동화를 한글책으로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 같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업은 2013년 시작해 올해로 7년째다. 지난해까지 일본·중국·베트남·키르기스스탄 등 10개국 결혼 이주여성 24명이 동화책 46권을 출판했다. 올해는 7명이 참여했다.
외국인 엄마들은 전래동화 선정에서부터 번역·각색·삽화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번역이 서툴거나 아이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한국 글쓰기 강사의 도움을 받아 고친다. 삽화도 그림 강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그린다.
엄마 작가들은 동화책을 만들며 자녀들과 '문화 소통'이 늘었다고 했다. 몽골 외가 방문을 꺼리던 졸롱바타르씨의 두 딸은 이제 엄마의 몽골 동화 삽화 작업을 열심히 돕는다. 졸롱바타르씨가 지난해 출간한 '지혜로운 할아버지와 사자'에 나오는 양떼 그림은 그의 열한 살 큰딸 작품이다. 다섯 살 작은딸은 몽골 외가에서 몽골 전통 가옥·의복을 보며 "몽골말로 뭐냐"고 묻고 "이거 그림책에서 본 적 있어"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미얀마 출신 킨 메이타(51)씨는 "자녀들이 어릴 때 시어머니는 내가 한국말만 쓰도록 했다"며 "자녀들에게 미얀마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해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킨씨는 "이제 스무 살 넘은 다 큰 자녀들이 내 동화를 가져와 읽어본다"며 "내 동화책이 다른 미얀마 엄마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 동화책은 11월 말 출간될 예정이다. 이들의 동화책은 일반 독자가 많지 않은 탓에 시중 서점 대신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만 판매한다. 관심 있는 기업·단체들이 사업을 도와준다. 작년엔 신세계백화점이 총 5000권을 구입해 캄보디아와 필리핀 교육부에 각각 기증했다. 올해 4월엔 현대제철 정책지원팀이 직원 다문화 교육용으로 50여권을 구매했다. 올해 개교한 경기 김포시의 한 다문화 학교도 최근 250권을 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