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구속영장 연이어 기각
법원 "주요 범죄 혐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
2015년 말 회계처리 변경 적정성이 핵심 쟁점
앞서 행정법원도 "위법하다 단정하기 힘들어"

인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태한 대표에 대한 구속에 재차 실패, 향후 수사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증거인멸 혐의를 주로 수사해 관련자 8명을 구속시켰지만, 막상 수사의 뼈대인 분식회계 혐의로는 모두가 영장이 기각됐다. 여기에 분식회계 의혹과 직접 관련 없는 김 대표의 횡령 혐의를 추가한 것을 두고 ‘별건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원은 지난 20일 새벽 김 대표와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전무, 경영혁신팀 심모 상무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검찰은 김 대표 등에 대해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심사를 맡은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명 모두에 대해 "주요 범죄 성부(成否)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가 수집돼 있다"며 "주거, 가족관계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까지 검찰의 수사내용으로는 혐의가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20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25일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기각된 뒤 두 번째로 영장이 기각됐다.

◇수사 8개월째...핵심 혐의 '분식회계'서 가로막혀
김 대표 등은 2015년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불법으로 부풀렸다는 분식회계 의혹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을 피하려고 자의적으로 회계처리를 했다며 검찰에 김 대표 등을 고발했다.

김 대표는 영장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9시간 넘게 진행된 영장심사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설령 회계처리에 일부 미비한 점이 있었더라도 이에 관여한 바는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상장을 하기 위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4조5000억여원의 재평가 이익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 측은 당시 삼성에피스를 공동설립했던 제약사 바이오젠이 삼성에피스에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 변동이 예상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계처리를 바꾼 것이라고 맞섰다.

검찰은 8개월 동안 수사를 벌이며 고의로 분식회계를 한 여러 증거들을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번 법원 판단을 두고 검찰 수사가 미흡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회계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삼성에피스가 설립될 때부터 콜옵션 계약이 체결돼 있어서 (삼성바이오) 상장을 앞두고 갑자기 콜옵션 행사가 예상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하는데, 콜옵션은 기업의 비용과 이득을 따져서 행사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어서 검찰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했다. 삼성에피스가 2012년부터 계속 적자를 냈기 때문에, 당시에는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게 맞는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앞서 행정법원도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위법한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취지의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은 증선위가 삼성바이오에 대해 내린 대표 해임 권고와 과징금 처분의 효력이 본안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정지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다수의 회계전문가들이 이 사건 회계처리에 대해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소견을 제시하고 있는 등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위법한지 불명확하다"고 했다.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의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부실수사에 별건수사 논란까지…檢 "계속 수사"
검찰은 이번에 김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횡령 혐의도 적용했다. 김 대표 등이 2016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회삿돈을 가로채 주식투자를 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김 대표가 당시 삼성바이오 주식 4만여주를 개인 돈으로 사들인 뒤 회사로부터 이 돈을 보전받았고,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주식 매수는 개인적인 일이고, 회사로부터 받은 돈은 업무실적에 따른 일종의 성과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주총 의결 등 필요한 절차도 다 밟았다"고 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 5월 김 대표에 대해 처음 영장을 청구할 때는 이 횡령 혐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구속영장이 기각되니까 개인 범죄 혐의를 추가한 별건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개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듯한 모습은 검찰 스스로 조바심 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며 "결과적으로 별건마저도 불분명한데 억지로 걸고 넘어진 모양새가 돼 버렸다"고 했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추가 수사 후 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 직후 기자들에게 "혐의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 등에 의한 입증의 정도,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이미 현실화된 증거인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과의 허위진술 공모 등에 비춰 구속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