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영 스타 쑨양(28)이 손가락 네 개를 들어 보이는 순간 광주 시립국제수영장 안은 중국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손가락 네 개는 종목 4연패(連覇)를 의미했다.

중국의 수영 스타 쑨양이 21일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 물을 튀기며 포효하는 모습. 쑨양은 세계선수권에서 이 종목 최초로 4연패(連覇)의 위업을 달성했다.

쑨양은 21일 광주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2초44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 역사상 최초로 이 종목 4연패를 거뒀다. 그동안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세계선수권 4연패 위업을 이룬 선수는 호주의 수영 영웅 그랜드 해켓(자유형 1500m·1998, 2001, 2003, 2005년)뿐이다. 쑨양은 이번 대회 경영 종목에 걸린 42개의 금메달 중 첫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됐다.

레이스 초반 힘을 비축한 쑨양은 200m부터 1위로 통과한 후 스퍼트를 시작하며 선두로 나섰고, 라이벌인 호주의 맥 호튼(23·3분43초17)을 따돌리며 가장 먼저 터치 패드를 찍었다.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쑨양(가운데)이 동메달리스트 가브리엘레 데티(오른쪽)와 포즈를 취하는 가운데 은메달에 머문 맥 호튼이 시상대 위에 올라가지 않고 서 있다.

쑨양은 중국 수영의 자존심이다. 이날 자유형 400m를 포함해 통산 세계선수권 금 10개, 올림픽 금 3개를 땄다. 한때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과 라이벌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2012 런던올림픽 자유형 1500m에서 세운 세계기록(14분31초02)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만 약 3200만명이 넘는 팬을 거느릴 정도로 자국에서 인기가 높다. 쑨양의 팬 클럽 'ChinaSun'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류위(중국·32)씨도 이날 회원 20여명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쑨양은 미국·유럽이 장악했던 세계 수영에 중국의 위대함을 알린 굉장한 선수다. 우린 끝까지 그의 편에 설 것"이라고 했다.

이날 경기는 쑨양과 호튼의 자존심 대결로 관심이 쏠렸다. 호튼은 2016 리우올림픽 때 쑨양을 2위로 밀어내며 금메달을 따냈다. 2017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선 쑨양에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호튼은 평소 경쟁자 쑨양을 두고 '약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쑨양은 2014년 혈관 확장제 성분이 있는 금지 약물에 양성반응을 보여 3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또 작년 9월엔 중국 자택에서 도핑 검사용 혈액이 담긴 유리병을 깨 도핑 방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국제수영연맹(FINA)의 위임을 받은 시험관들이 쑨양에게 합법적인 증명서와 자격증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밝혀지면서 검사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이 인정돼 쑨양은 국제수영연맹의 경고 처분만 받았다. 하지만 쑨양에 대한 도핑 의혹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경징계를 내린 국제수영연맹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지만, 쑨양은 CAS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이번 대회에 정상적으로 출전할 수 있었다. 논란이 계속 커지자 쑨양 변호인이 오는 9월 열리는 CAS 재판 과정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호튼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쑨양을 축하하는 다른 선수들을 뒤로하고 말없이 라커룸으로 향했다. 쑨양은 보란 듯이 호튼 앞에서 포효했다. 호튼은 이날 메달만 받고 시상대 위에 서는 것도 거부했다. 쑨양 역시 호튼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 중국 팬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만끽했다. 2007년 멜버른과 2011년 상하이 대회 우승자인 박태환이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쑨양은 경기 후 "다른 선수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호주 선수(호튼)가 내게 불만을 드러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는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나섰다. 쑨양 개인을 무시하는 건 괜찮지만 중국은 존중해야 한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