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단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삼성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미국·일본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보복 조치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또 "반도체 생산 라인 조업 중단으로 끔찍한 결과를 상기시키고 싶지 않다. 세계 수십억명 소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을 비판하며 미국이 중재자로 들어와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또 "모든 옵션을 대화 테이블 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존경하는 에도 막부 말기 사상가이자 정한론(征韓論·한국 정벌론) 주창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메이지유신까지 거론하며 아베 총리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정한론자 언급하며 '한·일 우호' 강조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요시다 쇼인, (메이지유신 주역인)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들은 양국의 미래 지향적 협력에 대해 동의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지도자였던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혀 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2005년 재직 당시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은 요시다의 행동력이었다. 요시다가 있었기에 (그의 제자인) 다카스기도 나왔다"며 자신을 요시다, 아베 총리를 다카스기에 비유했다. 청와대에선 "아베 총리의 '롤 모델'까지 언급하면서 한·일 관계 복원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이 관계자는 "일본 국민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예를 들겠다"며 일본의 '삿초 동맹'도 언급했다. 메이지유신은 19세기 당시 앙숙이었던 사쓰마(薩摩)번과 조슈(長州)번이 동맹해 도쿠가와 막부를 몰아낸 뒤 시작됐다. 메이지유신이 '적과의 동맹'을 통해 가능했던 것처럼, 한·일도 손을 잡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우리 정부가 정한론을 펼쳤던 요시다 쇼인까지 언급하면서 한·일 관계 복원을 얘기한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요시다는 '정한론을 통해 조선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일본의 제국주의를 이론으로 뒷받침한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본을 설득하는 차원에서 나온 얘기겠지만, 일본 제국주의 사상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까지 끌어들인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메이지유신과 한·일 우호를 연결한 것이 일본으로선 생뚱맞게 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여러 옵션 가능"… 대책은 안 밝혀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일본은 G20의 주최국으로 자유무역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며 "우리는 건설적인 제안에 열려 있다"고 했다. 이어 "(경제 보복)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논의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대화 테이블에 여러 옵션(방안)을 놓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이 문제는 한·미·일 3각 협력 차원의 외교적 대화를 통해 푸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일본이 거부한 한·미·일 고위급 회담을 재차 촉구한 것이다.
영어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는 'dialogue(대화)' 'consultation(협의)'이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전날 청와대가 한·일 기업이 조성한 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 방안 이외에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놨던 것과는 온도 차가 있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외신 기자들에게 한국이 일본보다 더 대화에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일본이 제시한 '3국 중재위' 등에 대해선 수용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요시다 쇼인은
'한반도 정벌' 주창자 이토 히로부미 길러내
요시다 쇼인은 일본 막부(幕府) 말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19세기 중반 ‘쇼카 손주쿠(松下村塾)’ 학당을 만들어 훗날 메이지유신을 주도하고 조선 침략에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을 길러냈다. 이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요시다 쇼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고 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