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6일 일본이 요구해 온 '제3국 중재위 구성'에 대해 "수용 불가"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일본이 답변 시한으로 제시한 18일을 이틀 앞두고 기존 방침을 명확히 했다. 청와대는 또 한·일 기업이 조성한 기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1+1' 기금 방안에 대해서도 "일본 측이 수용할 수 있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1+1'안은 그간 우리 정부가 제안한 사실상 유일한 '외교적 해법'이었지만 이마저도 '검토'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외교적 해결의 장(場)으로 돌아오라"며 외교적 협상을 직접 제안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문 대통령 지적은 전혀 맞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을 대놓고 비판하자 청와대 기류가 강경해졌다는 관측이다.

◇日이 문 대통령 공격하자 강경 기조로

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 국민과 피해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함께 논의해보자"고 했다. 그간 문 대통령은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사법부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합리적 방안'을 언급하자 여권에서도 "일본 보복 조치가 계속될 조짐이 보이자 청와대가 '외교적 대화'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 14일 일본 고베에서 참의원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삼권 분립'의 문제"라며 "사법부에서 판결한 것을 행정부에서 뒤집을 수 없다는 (청와대)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1시간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다시 브리핑을 갖고 "일본의 3국 중재위 제안은 수용 불가"라며 "기본적으로 지금 (일본의) 수출 규제 상황이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일본이 태도를 바꾸기는커녕 각료를 통해 문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자 강경 기조로 대응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한국 정부와 한·일 기업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2+1'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강제징용) 피해자가 합의한 방안 이외 다른 것은 안 되기 때문"이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언급했다. 기존의 입장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냐'는 질문엔 "있다면"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정부는 징용 피해자들과 추가 접촉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는 정부가 실질적인 노력을 진행하지 않으면서 사태 해결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靑, 대부분 방안 부정적 … 장기전 갈 듯

이날 청와대가 '3국 중재위' 수용 불가 입장을 냄에 따라 일본은 다음 단계로 예고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 국가 제외 등 추가 보복 조치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ICJ 회부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안 받겠다"는 입장이다. 여권(與圈) 일각에서 제기됐던 특별법 제정 역시 수용하지 않겠다는 기류다.

한·일 양국의 산업부 장관도 이날 SNS(소셜미디어)에서 정면 충돌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 측이 구체적인 근거 제시 없이 한국의 수출 통제 문제점을 시사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전문가 등의 국제기구 공동조사를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일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트위터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보복이 아니라 '수출 관리'라고 주장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일 특사론'도 제기되고 있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총리가 국내 인물 중 일본을 제일 잘 아는 분인 것은 틀림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적절한 시간을 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저런 식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특사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청와대는 일본과 직접 교섭보다는 미국의 중재 등을 통해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여권 관계자는 "일본 보복은 아베 정권의 동북아 안보 및 경제 협력의 틀 자체를 바꾸려는 계획 속에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징용 문제로 협상을 재개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