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

한밤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손톱을 깎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화장지에 곱게 싸 불사른다 엉킨 숨을 풀며 씻은 발을 다시 씻고 손바닥을 펼쳐 손금들이 어디로 가고 있나, 살펴본다 아직은 부름이 없구나, 고립을 신처럼 모시면서 침묵도 아껴야겠구나 흰 그릇을 머리맡에 올려둔다 찌륵 찌르륵 물이 우는 소리 들리면 문을 조금 열어두고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불을 끄고 앉아 나는 나를 망자처럼 바라본다

초록이 오시는 동안은

―전동균(1962~ )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不學禮, 無以立)'는 공자의 말씀이 있습니다만 세태를 살펴보면 '예'는 눈 씻고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그저 옛 책에나 밑줄 위에 덩그렇게 올라앉은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나 '높은 분들'의 그 적나라한 상스러움은 눈 둘 데가 없을 적이 많습니다.

이 시 속에서 만나는 ‘신독(愼獨)’의 희고 적적한 풍경은 희번덕거리고 번잡한 세상사의 소음을 가릴 만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문득 근원적 ‘생’이 다가옵니다. 지나간 생애와 다가올 생애가 말을 걸어옵니다. 일어나 스스로를 가지런히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립’을 모시고 ‘침묵’마저도 아껴야 한다는 전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