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 업체인 미국 아마존이 7억달러(약 8000억원)를 들여 미국 내 직원 10만명에게 직업 재(再)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11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물류 처리, 상품 배송, 일반 관리 직군의 인력들이 사내 고급 일자리로 옮기거나 회사를 나가 전혀 다른 직업을 찾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아마존은 미국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알리바바와 더불어 AI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이다.

제프 월키 아마존 소비자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이미 우리 사회와 노동시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며 "새 직업 훈련 프로그램은 직원의 미래 대비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로봇으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직원 3명 중 1명이 전직 대상

아마존은 미국에서 3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전체 직원 3명 중 1명이 재교육 대상인 셈이다.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기업의 인력 재교육·재배치 시도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IT 분야 교육을 강화해 인터넷 쇼핑 서비스 개발 및 운영, 고객 서비스 등에 새로운 인력을 배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컨대 창고에서 물류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은 회사의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워 엔지니어로 일할 수 있다. 이미 학부 수준의 컴퓨터 지식을 갖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사내에 개설한 '머신러닝(기계학습) 대학'에서 대학원 수준의 AI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앞으로 6년간 직원 1명당 평균 7000달러(약 820만원)가 투자된다.

미국 인터넷 쇼핑업체 아마존이 배송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사람이 직접 상품을 옮기고 분류하는 일(왼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체 로봇 기술을 이용한 자동 물류(오른쪽)의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이미 미국 전역 105개의 물류창고에서 5만 대의 로봇이 사람이 하던 단순 업무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아마존은 직원들이 다른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도 도울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간호나 항공기 정비 등 비(非)IT 분야의 자격증이나 학위를 따는 직원들에게 학비의 95%를 지원하는 '아마존 커리어 초이스' 프로그램도 내놓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회사를 나가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도 있다.

아마존은 내부적으로 AI와 로봇에 의한 업무의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은 지난 4월 '아마존 프라임' 회원을 대상으로 1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객 주문부터 상품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을 현재보다 30% 이상 줄이기로 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사람보다 일처리가 빠른) AI와 로봇의 업무 적용 범위를 크게 늘릴 수밖에 없어 기존 인력의 대규모 재배치가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은 이미 미국 전역 105개의 물류 창고에서 5만대의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의 직원 재교육은 사업 영역이 인터넷 쇼핑에서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동영상·음악 콘텐츠, IT 기기 등의 영역으로 계속 확장함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인력을 재교육을 통해 자체 충당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선제 대응 나서는 해외 기업들

AI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빨리 대체할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은 고용 구조의 변화를 통해 이미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지난 5월 500명의 콜센터 직원들을 재교육해 소셜미디어 매니저, 고객 경험 디자이너, 음성인식, 생체 전문가 등 13개의 새로운 직업군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고객 상담을 AI로 자동화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미리 콜센터 직원들을 다른 분야로 재배치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 것이다.

유럽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부터 창구 직원 중 희망자에게 AI와 코딩 교육을 통해 온라인 금융 상품 개발자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 통신 기업 AT&T는 지난해부터 연차가 높은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웹 사이트 디자인과 모바일 앱 개발 교육을, 미 유통업체 월마트는 매장 근무 직원들을 상대로 IT 분야 교육을 강화해 향후 재배치할 계획이다. 월마트는 올해부터 미국 내 1000여 개 매장에 재고관리·청소 로봇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최저임금 인상과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무인화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은 이로 인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기존 요금 수납 인력 6700여 명의 구체적인 재교육이나 전직 대책 없이, 전국 고속도로에 AI 기술이 적용된 무정차 요금 징수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수납원들이 파업으로 대응하자 이를 철회했다.

김창경(과학기술정책학과) 한양대 교수는 "AI가 대체하는 일자리만큼 AI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면서 "한국도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교육 체계와 기업의 고용 구조 등을 선제적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