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할렘의 디자이너 대퍼 댄(74)이 지난주 출간한 자서전 '대퍼 댄: 메이드 인 할렘'에 미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 등은 할렘에 뿌리를 둔 그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댄은 할렘의 작은 의상실에서 흑인 스트리트 패션을 모티브로 디자인을 시작, 최근엔 명품 브랜드 구찌 등과 협업을 할 정도로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 반열에 든 인물이다. 지난 5월엔 패션쇼 메트 갈라쇼에 초청받았다. 하지만 자서전에 관심이 쏠리는 건 댄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영화 같은 반전 인생을 살았다.

미국 뉴욕 할렘 출신의 디자이너 대퍼 댄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인생 역전 성공 스토리를 담은 자서전을 지난주 출간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본명이 대니얼 데이인 그는 1944년 맨해튼 할렘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녀 6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장 세 곳을 전전했지만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댄은 열세 살 때 거리의 마약 중독자를 상대로 주사위 노름을 해서 돈을 따기도 했다. 세련된 도박꾼의 이름을 딴 예명 '대퍼 댄'은 이때 만들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고, 20대 초반에는 마약 거래와 카드 사기 혐의로 체포된 적도 있다.

그의 인생을 뒤바꾼 것은 1974년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세기의 권투 대결이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그는 우연히 라이베리아에서 흑인 재단사가 양복을 만드는 광경을 접했다. 당시 할렘엔 맞춤형 양복집이 없었기 때문에 잘하면 틈새시장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1982년 할렘에 '대퍼 댄의 부티크'를 열고 래퍼 등 흑인 아티스트와 갱스터를 주요 고객으로 삼고 옷을 만들었다. 할렘 스트리트 패션을 모티브로 한 의상에 구찌 등 명품 브랜드의 짝퉁 로고를 다는 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뒷골목 여성들이 짝퉁 명품 가방을 놓고 싸우는 걸 보고서 '아, 이게 돈이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댄은 당시 유행한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인쇄물에서 영감을 얻어 짝퉁 명품 로고를 대량 생산한 뒤 자신의 옷에 치렁치렁 달기 시작했다.

댄의 부티크는 할렘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복싱 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힙합 밴드 솔트 앤 페파, 가수 바비 브라운 등이 그의 맞춤 의상을 입었다. 하지만 1992년 구찌 등 명품 브랜드가 저작권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나락까지 떨어졌던 그는 1990년대 후반에 자신의 집 한 귀퉁이에 다시 작업장을 열고 옷을 만들면서 재기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2017년엔 과거 자사의 로고를 사용했다고 소송을 걸었던 구찌가 댄의 디자인을 도용했다. 이로써 패션계에 널리 이름을 알린 그는 이듬해 화해의 의미로 구찌와 협업한 '구찌-대퍼 댄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댄의 인생을 "스트리트 스타일을 쿠튀르(유명 디자이너 제품)로 만든 여정"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