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외압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KBS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에 대해 KBS가 "청와대에서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8일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이 지난달 25일 청와대 외압 의혹을 제기한 이후 KBS가 처음 발표한 공식 입장이지만, KBS 내부에선 해당 프로그램을 둘러싼 의혹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지난 주말에 이어 KBS 사내게시판에는 기수별, 개인별 명의로 비판 성명과 논평이 잇따랐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이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후 2주일 동안 최소 15건 이상의 비판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지난달 18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태양광 사업 복마전' 편에서 서울시가 주도하는 태양광 사업 비리에 연루된 협동조합 이사장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실에서 막말을 퍼부은 녹취록이 공개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 사업의 난맥을 짚은 이날 방송에 대해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시정 조치'를 요구해 청와대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KBS가 공식 입장을 밝힌 이날도 게시판은 찬반으로 나뉘어 난타전이 벌어졌다. 전 정부 시절 보도국 간부를 지낸 황상무 전(前) 앵커, 박승규 전 국장 등 11명의 고참 기자는 '어설픈 변명 속에 숨어 있는 그림 찾기'란 글에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시정조치를 요구했는데 사흘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한 발언을 볼 때, (KBS 공식 입장과 달리) 출입 기자한테서 듣기 전에 정정 요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에는 보도본부 명의로 "과거 세월호 사건 때 이정현 전 수석이 KBS에 전화 걸어 불만을 토로하고 방송 내용의 변경을 요구한 것과 달리, 윤 수석이 공개 브리핑에서 해명을 요구한 것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라고 주장하는 질의응답(Q&A) 형식 글도 올라왔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인 KBS공영노조는 "KBS가 왜 윤 수석을 보호하는가,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는 보도본부장이 윤 수석을 걱정하느냐"고 비판했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인 KBS에는 연간 6500억원의 수신료가 투입되고 있다"며 "공영방송의 위상 추락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최고 홍보 책임자이자 말을 꺼낸 당사자인 윤 수석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KBS "외압 없었다" 발표에도 가라앉지 않는 논란

KBS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방송 전은 물론 재방송 보류 결정을 내리기까지 보도본부 제작 책임자들은 해당 프로와 관련해 청와대 측으로부터 외압은커녕 어떤 연락도 직접 받은 바 없다"면서 "방송 다음 날인 19일 저녁과 20일 오전 국민소통수석실 관계자들이 KBS 출입 기자에게 '해당 프로그램 일부 내용이 잘못됐다. 정정 보도를 신청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윤 수석의 발언 내용과 비교하면 석연찮은 부분이 눈에 띈다. 청와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바 없다는 KBS 입장대로라면, 윤 수석은 '시정 조치' 요구 이후 사흘씩 답변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사내 게시판을 통해 비판 성명에 참여한 KBS의 한 부장급 기자는 "사흘씩 답변을 기다렸다는 시정 조치 내용이 무엇인지는 윤 수석이 직접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재방송 결방 사유도 석연찮아"

지난달 22일로 예정돼 있던 '시사기획 창' 재방송 결방 사유도 KBS는 "청와대가 오류라고 주장한 내용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재방송을 보류했다"면서 "청와대의 문제 제기 전에 사내 심의에서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이뤄진 심의평가 내용은 KBS가 밝힌 것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KBS의 한 기자는 "당일 3건의 심의평에도 반론 누락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청와대가 지적한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고, '태양광 사업 권력 실세들의 비리를 파헤친 의미 있는 고발 프로'라는 호평이 더 많다"면서 "재방송 취소 결정에는 청와대의 불만 표시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실망감 커"

언론 관련 시민단체인 미디어연대는 6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안을 '청와대와 KBS가 연계된 조직적 방송법 위반 사례'로 규정했다. 한국기자협회는 편집위원회 명의로 나온 '우리의 입장'을 통해 "정치권력의 언론 간섭은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된다. 그렇게 보이는 것조차 언론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훼손한다"면서 "이번 외압 논란은 윤 수석의 발언으로 시작된 만큼, 윤 수석이 누구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지부터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명예교수는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존재 가치는 중립성과 공정성에 있는데, 청와대의 입김 한 번에 흔들리는 모습에 시민들은 물론 내부 기자들이 큰 실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