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님 작품을 교회 갤러리에 전시하니 교인들이 아주 좋아합니다."(정병주 목사)
"제 분신(分身)과 같은 작품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이환영 화백)
지난 3일 오전 경기 군포시 용호1로 선한목자교회 5층 갤러리에서 만난 정병주(65) 담임목사와 한국화가 이환영(74)씨는 서로를 보며 지그시 미소 지었다. 교회 갤러리 벽엔 '예수, 그의 나라와 구원' '주기도문' '오병이어(五餠二魚)' 등 기독교 주제를 담은 회화 20여점이 걸렸다. 지난 4월 이씨가 교회에 기증한 작품들. 5월 한 달간 교회 갤러리에서 전시됐고 6월엔 인근 경기중앙교회 갤러리에서 순회전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상설 전시 중이다.
정 목사와 이 화백의 만남은 1983년 서울 가락동 잠실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은 빈천지교(貧賤之交)였다. 당시 정 목사는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이 교회 전도사로 부임했고 안수집사였던 이씨는 늦깎이로 1977년 국전에 입선하며 데뷔한 지 6년째인 신인 화가였다. 평소 예술에 관심 많던 정 전도사는 퇴근 후 이씨 화실에 들러 신앙과 예술 이야기를 나눴다. 1987년 정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게 됐다. 이씨는 먹으로 정성껏 그린 대나무 그림 한 점을 선물했다. 무성한 대숲이 아니라 이제 막 자라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여백엔 디모데후서 중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구절을 적었다. 목회자로 첫발을 내딛는 정 목사에게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은 1989년 정 목사가 다른 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면서 헤어졌다.
이후로 각자 바쁘게 살아왔다. 이씨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제자들 모임인 운사회 회장, 기독미술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화업을 이어갔다. 선한목자교회는 1994년 산본 신도시 상가 건물을 임대해 교회를 개척한 뒤 현재는 예배 출석 교인 7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정 목사는 30년 동안 대나무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며 볼 때마다 목회자로서 초심(初心)을 되새겼다. 14년 전 현재 위치에 교회를 신축한 후론 담임목사실에 걸어두고 매일 작품을 보고 있다.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3년 전. 정 목사가 수소문 끝에 이 화백에게 연락했다. 첫 마디가 "지금도 내 앞에 대나무 그림이 걸려 있다"였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이 화백은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작품 도록을 보냈다. 정 목사가 도록 중 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린 영월 청령포 그림을 발견하고 같은 풍경 그림을 이 화백에게 의뢰하면서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군포의 교회를 방문한 이 화백은 5층 갤러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작품 중 기독교 미술만이라도 한곳에 모으고 싶었던 차였다. 무상 기증 뜻을 전하니 정 목사도 대환영이었다. 평소 문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게 정 목사의 지론. 그는 "교인들께 화가의 명성보다는 그림에 담긴 열정과 영성을 보라고 권한다"고 했다. 이씨는 "화실에 쌓여 있던 그림들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걸려 있으니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