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나면 셀카를 찍고, 여자 친구에겐 '거미줄 타면서 문자 메시지 보내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지난 2일 개봉해 이틀 만에 123만명 관객을 모은 소니 픽처스 영화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감독 존 와츠)은 히어로 세계에도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이제 막 16세가 된 청소년. 전형적인 밀레니얼(1980~2000년대 초 출생) 세대다. 인터넷 검색과 소셜 네트워크로 대다수의 일을 해결하고, 자신의 삶과 영웅으로서 할 일을 분리해 생각할 줄 안다. 이른바 '워라밸'도 알고, 사랑과 우정도 지킬 줄 아는 귀여운 영웅. 지구를 구해야 하는 히어로를 다루는 액션 영화조차 밀레니얼 감성을 입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세상을 떠난 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세대 히어로는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거나 은퇴했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구(舊)세대가 떠난 자리. 신세대 히어로들은 다들 나름대로 바쁘다. 캡틴 마블은 우주에 있고, 토르는 여행 중이다. 지구를 지킬 영웅은 아이언맨이 "키드"라고 불렀던 열여섯 살 스파이더맨뿐. 파커의 마음은 그러나 다른 곳에 있다. 유럽 여행 중 MJ(젠데이아 콜먼)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 것. 난데없이 악당 '엘리멘탈 크리쳐스'가 나타나면서 그의 계획도 흔들린다.
샘 레이미 감독이 내놨던 '스파이더맨' 3부작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을 보면서 세상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2002년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은 거대한 운명의 무게를 견디는 주인공이었다. 뜻밖의 초능력을 얻으면서 삶도 송두리째 흔들린다. 가족을 잃었고, 연인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1996년생 배우 톰 홀랜드가 연기하는 스파이더맨은 그 반대다. 영웅의 책임은 잘 알고 있지만, 개인의 행복까지 포기하진 않는다. 필요할 땐 전화기를 꺼놓고 친구와의 시간을 만끽한다. 여행 갈 때 스파이더맨 슈트는 두고 간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면 '칼퇴근'하는 히어로가 될지도 모른다.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할 때 그가 활용하는 건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중계하는 '라이브 방송'. 거미줄을 타면서 문자를 보내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뻔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 역시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원조 스파이더맨이 사랑한 MJ는 붉은 머리칼에 흰 피부를 지닌 백인 여성(커스틴 던스트). 새로운 MJ는 시니컬하고 어두운 세상의 이면에 관심이 많은 혼혈 흑인 소녀다. 기존의 MJ가 스파이더맨이 위기로부터 구해줘야 하는 대상이었다면, 새로운 MJ는 스파이더맨을 응원하고 돕는 조력자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홀로 짊어지는 히어로 대신, 좌충우돌하면서도 대화하고 의논할 줄 아는 '어린 영웅'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