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 충남 아산의 도고 파라다이스호텔. 당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부장이던 진대제 전무가 핵심 간부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2가지 시나리오'. 첫째는 미국의 반도체 강자(强者)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 뛰어든다, 둘째는 일본이 한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가상 시나리오였지만 이를 접한 간부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한 임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다"고 했다.

당시 회의를 주재했던 진대제(陳大濟·67·사진) 전 삼성전자 사장(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3일 본지 인터뷰에서 "25년이 지난 지금, 당시 예상했던 일본의 수출 금지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 안타깝다"고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3종(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진 회장은 "한국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어려움을 주자는 생각으로 오랜 연구 끝에 대일(對日) 의존도가 높은 세 가지 소재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례(前例)가 없는 놀라운 일로 상당한 치명타를 날렸다"고 말했다.

이어 진 회장은 "우리가 소재 국산화에 뛰어든다고 해도 최소 1~2년은 족히 걸리고 어쩌면 영원히 대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면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재고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두 달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