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도입된 ‘장애인 등급제도’가 31년 만에 폐지된다. 기존 6개 등급제를 장애 정도에 따라 두 단계(중증·경증)로만 구분한다. 이에 따라 각종 장애인 지원과 혜택이 대폭 확대된다.

보건복지부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장애인 등급제 단계적 폐지 및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6단계 장애 등급 폐지…중증과 경증으로만 나눠
복지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기존 1~6급으로 구분한 장애 등급을 없애고,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 등 두 단계로만 구분하기로 했다. 기존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에 속한다. 단계 구분을 위해 장애인 등급 심사를 다시 받거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를 새로 발급 받을 필요는 없다. 복지카드를 분실하거나 갱신할 경우 새 장애인 등록증이 발급된다.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지하도 입구에 설치된 장애차별철폐를 주제로 한 오종선 작가 휠체어 모형 작품.

장애 등급 폐지에 따라 건강보험료 경감 혜택은 대폭 늘어난다. 기존 1·2급 30%, 3·4급 20%, 5·6급 10% 등으로 경감해주던 것을 중증 30%, 경증 20%로 바꿔 3급과 4·5·6급 대상자들은 혜택이 늘어나게 된다. 노인장기요양 보험료도 종전 1·2급 30%에서 중증 30%로 대상이 넓어진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휠체어 등을 장착된 특별교통수단도 1·2급만 쓸 수 있었는데, 중증으로 대상을 넓혔고, 장애인 200명당 1대(총 3179대)인 차량 수도 150명당 1대(4593대)로 점차 늘려 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자세보조용구, 이동식전동리프트 등의 장애인보장구 지원 폭을 늘리고, 현재 28개인 장애인 보조기기 품목을 2022년까지 36개로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일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어도, 일정 소득과 재산을 가진 부모·자녀가 있으면 기초 생계 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했던 기존 제도도 2020년 폐지된다. 앞으로는 소득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 기초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 서비스 현실화 위해 '종합조사' 실시한다
복지부는 장애인 서비스 지원을 위해 신청자들에 대한 '종합조사'도 실시한다. 장애인 서비스 신청자의 일상생활 수행능력과 인지·행동특성, 사회활동, 가정환경 등을 판단해 현물과 현금 지원 수준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종합조사는 내달 1일부터 활동지원급여와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 거주시설, 응급안전서비스 등 4개 서비스 분야에서 우선 실시한다.

보건복지부 제공

장애인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종합검사가 도입되면 이들에게 돌아가는 활동지원서비스는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복지부는 보고 있다.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현재 월 167.35시간을 지원받았는데, 앞으로 최대 175.48시간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월 116.33시간에서 122.66시간으로, 장애 정도가 가장 심한 최중증 장애인은 월 441시간에서 480시간으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 부담금도 최대 50% 낮아져 현재 월 32만2900원에서 15만8900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제공

복지부는 종합검사 시행 이후 장애인단체 의견을 수시로 듣고, 제도운영 점검을 통해 제도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 ‘종합조사 고시 개정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등이 지난5월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장애인 예산 확충 및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몰라서 서비스 못받는 일 없도록 하겠다"
복지부는 장애인이 몰라서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전달체계를 강화한다. 우선 사회보장 정보시스템 '행복e음(ssis.or.kr)'을 통해 장애 유형과 정도, 연령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별해 개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찾아서 알려준다는 계획이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는 '장애인 등록 이후 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장애인이 64.2%에 달했다.

현재 장애인 연금에만 적용중인 ‘서비스 수급희망 이력관리’를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수당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서비스 수급희망 이력관리는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신청인에게 이후 소득수준 등 조건이 바뀔 경우 자동으로 서비스를 신청을 안내하는 것이다.

각 읍·면·동의 찾아가는 상담은 혼자 사는 중증 장애인과 중복 장애인(두가지 이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 등으로 확대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 기초자치단체(시·군·구)에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설치해 장애인에게 특화된 사례를 관리하도록 할 방침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31년 만에 변경하는 이번 장애인 제도는 장애인 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라며 "정책 당사자인 장애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