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을 겨냥해 "중국 말대로라면 미국은 태평양의 3분의 1이 자기 바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친중(親中) 행보를 이어온 두테르테가 이례적으로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필리핀 현지 언론과 독일 DPA 통신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22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회의 참석 전 기자들에게 "중국이 바다(남중국해)의 소유권을 선포하는 게 적절한 일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바다의 소유권을 주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두테르테는 또 "이번 아세안 회의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가지는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2주 새 필리핀에서는 반중(反中)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발단은 지난 9일 필리핀 인근 해상에서 중국 선박이 필리핀 어선을 충돌해 어선이 침몰하고 필리핀 선원 22명이 실종·사망한 사건이다. 필리핀 국방부에 따르면 사고를 낸 중국 선박은 배를 충돌해 침몰시키고도 물에 빠진 선원들을 구조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 중국 측은 "우연히 충돌해 사고가 났으며 고의로 충돌한 게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필리핀에서는 중국에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2일 필리핀 마닐라 도심에서는 성난 시민들이 반중 시위를 열고 '선원 22명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의미로 중국 오성홍기 22개를 불태웠다"며 "올해 들어 최소 275척의 중국 선박이 필리핀이 실효 지배 중인 티투섬 주변 해역에 정박하거나 항해하며 필리핀 어선을 위협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중국을 강하게 비판한 건 이런 여론을 의식한 거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두테르테는 이번 사고를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사고로 '두테르테가 중국의 침략과 모욕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분노가 거세게 일고 있다"며 "친중 행보를 통해 전통 우방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두테르테 외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