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캐나다 몬트리올 컨벤션센터 ICRA(국제 로봇·자동화 학회) 전시장에선 탱크처럼 생긴 로봇이 긴 팔을 이용해 바닥을 훑고 다녔다. 로봇은 바닥에 있는 헝겊 조각을 집어서 등에 있는 바구니에다가 자꾸 집어넣는다. 한참을 구경하던 내가 물었다. "이거 그런데 누가 조종하고 있나요?" 옆에 선 연구자가 '허허' 웃었다. "아무도 없어요. 로봇이 알아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겁니다."

공상영화 속 로봇은 원래 인간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 아니던가. 실제로 공학자들은 인간의 지시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관절과 근육을 만드는 작업에 지난 100년 동안 매진해 왔다.

하지만 4000여명이 참석한 지구촌 최대 매머드급 로봇 콘퍼런스인 ICRA의 올해 주인공은 이 같은 '몸'이 아닌 '두뇌'였다. 인간처럼 움직이는 데 급급했던 로봇이 이제는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콘퍼런스에서 선정한 우수 논문 중 거의 절반이 이런 머신러닝(컴퓨터 자율학습) 관련 내용이었다.

ICRA 첫날 기조연설은 가장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낸 사람이 맡는다. 올해 연사는 AI 전문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벤지오 교수는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또렷하게 들려줬다.

"로봇이 실제로 쓰이는 현장은 (실험실과 달리) 변화무쌍합니다. 로봇도 인간처럼 환경에 적응해가며 활동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선 로봇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블레이드러너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똑똑한 로봇이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려면 머신러닝을 통한 순발력 있는 상황 판단과 대처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현장에서 만난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 미리 엿본 그 미래의 모습을 소개한다.

①드론이 알아서 비행하며 농장 모니터

지금까지 드론은 대부분 사람이 지상에서 조종해야 했다. 하지만 콘퍼런스에 등장한 드론은 조종사가 필요 없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었다.

출발점과 도착점만 정해주면, 하늘을 날며 어떤 물체(건물이나 새)를 피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 최적의 길로 날아간다는 뜻이다. 이 분야 최고 석학인 비제이 쿠마르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말했다. "드론이 드넓은 농장 위를 날며 과일이 얼마나 많이 열리고 잘 익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과일을 따는 법을 잘 습득한 지상의 로봇에 어느 지점에 가서 과일을 수확하라고 명령한다면, 인류는 더 맛있는 과일을 싸게 맛볼 수 있다는 뜻이다.

②어떤 모양의 물건도 문제없이 든다

ICRA가 끝난 후 로봇 산업의 '메카'로 통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를 찾았다. 스타트업인 '라이트핸드(Righthand) 로보틱스'에선 로봇 팔이 온갖 모양의 물건을 집어서 분류하고 있었다. 이 회사 로봇은 어떻게 생긴 물건이라도 척척 잡아내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해 진화 중이다. 마케팅·제품 책임자 빈스 마티넬리는 말했다. "전자상거래 업체 창고엔 네티즌들이 주문한 온갖 크기와 형태의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죠. 이걸 분류하고 적절한 박스에 넣어줍니다. 일손을 크게 줄여주는 겁니다."

③생각하며 날아다니는 택시

요즘 돌아다니는 자율주행차는 여러 '규칙'을 암기해서 움직인다. '빨간 신호등을 보면 멈춘다' 같은 공식을 많이 외워서 이동한다. 하지만 운전이란 돌발상황의 연속. 눈이 왔더니 도로를 못 알아보고, 창문에 비친 흰 트럭을 하늘로 오해하는 등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한다.

ICRA에 참석한 승차공유회사 우버(Uber)는 사람이 도로를 배우듯이 운전과 관련한 수많은 데이터를 삼키듯 학습해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한 인식을 넘어, 주변 자동차·사람 등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공을 튕기며 걷는 아이는 공을 놓쳐 도로로 뛰어들어올 수 있다'처럼)까지 한다. 우버의 자율주행차 연구소장인 라쿠엘 우터슨 토론토대 교수는 '하늘 나는 우버'(Uber Air) 동영상을 뽐냈다. "이런 세상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겁니다. 기대하십시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인간에 도움주는 로봇, 저도 꼭 만들어낼게요

로봇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아이언맨을 50번 넘게 봤습니다. 로봇만 보면 '어떻게 움직일까' 골몰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은 로봇공학박사 학위를 따려고 미국 유학을 앞둔 '로봇 사랑꾼' 도원경(25·사진) 입니다.

지난달 20일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로봇 및 자동화 콘퍼런스'(ICRA)에 갔더니 20대 중·후반 제 또래 학생들이 발표장에 가득했습니다. 한쪽에서 당당히 연구 과제를 발표하던 미국 스탠퍼드 대학생에게 "이번 논문은 얼마 만에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4~6주 정도"란 답이 돌아오더군요. 두세 달쯤 걸릴 것 같아 보였는데, 후딱 처리해 내는 로봇 인재(人材)들의 모습에 묘한 경쟁심이 생겼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선 로봇 스타트업계 사람들을 만나며 로봇 산업의 미래를 엿봤습니다. 특히 로봇 '두뇌'에 해당하는 기계학습 분야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보스턴의 레스토랑인 '스파이스(SPYCE)'에선 로봇이 만든 볶음밥이 맛있어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식당을 나서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나도 언젠가 인간에게 큰 도움 주는 로봇을 만들어 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