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도 잘 꿰면 반짝이는 보배가 된다. 9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브로드웨이 내한 뮤지컬 '썸씽로튼'은 '태초에 뮤지컬이란 장르가 어떻게 탄생했을까'란 질문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르네상스 시대, 그의 명성에 짓눌려 번번이 흥행에 참패하는 무명 극작가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가공(架空)의 이야기는 설득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2시간 넘게 관객을 쉴 틈 없이 웃긴다. 머리를 텅 비우고 깔깔대기에도 좋지만, 곳곳에 숨겨진 사회 풍자와 각종 뮤지컬 패러디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5년 3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후, 그해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막 발표한 셰익스피어가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16세기 런던의 극장가. '바텀 극단'을 이끄는 닉과 나이젤 형제는 셰익스피어의 그늘에 가려 올리는 연극마다 번번이 흥행에 실패한다. 궁지에 몰린 닉은 셰익스피어의 다음 작품 아이디어를 훔치기 위해 자신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라고 주장하는 예언자 토마스를 찾아가고, 그는 장차 연극에 노래를 결합한 '뮤지컬'이란 장르가 크게 유행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어 셰익스피어의 차기 히트작도 점쳐 보는데, 문제는 그의 예지력이 항상 신통하진 않다는 것. 그 결과 실수로 '햄릿'을 '오믈릿(오믈렛)'으로 예언하고, 닉은 달걀로 만든 오믈릿을 주제로 한 우스꽝스러운 뮤지컬을 제작한다.
이 뮤지컬의 압권은 토마스의 예언에 따라 개연성이라곤 하나도 없이 제작된 '오믈릿'의 공연 장면. '햄릿'과 각종 뮤지컬에 대한 예언이 뒤섞이면서 '캣츠' '드림걸스' '렌트' 등 유명 뮤지컬 작품의 인명과 대사, 노래가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예컨대 덴마크 왕자인 '햄릿' 대신 데니시(덴마크식 패스트리 빵)가 주인공이 되고, 달걀 역으로 나온 흑인 여배우가 뜬금없이 '드림걸스'의 노래 '앤드 아이 앰 텔링 유 아이엠 낫 고잉(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부르는 식이다. '오믈릿' 장면 외에도 작품 전반에 풍자와 언어유희가 넘쳐나는데, 영화 '데드풀'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번역해 호평받은 황석희의 매끄러운 번역이 돋보인다.
엉망진창으로 끝난 '오믈릿'과 달리, '썸씽로튼'은 무엇 하나 흠 잡기 어려운 뮤지컬이다. 기상천외하지만 탄탄한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 화려한 탭댄스와 아름다운 넘버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작품 속 "배우가 대사 대신 뜬금없이 노래하는 공연을 누가 보겠느냐"는 닉의 질문에 토마스는 답한다. "뮤지컬은 편안하고, 너의 우울한 감정을 풀어주지. 춤과 노래, '달달한' 로맨스까지. 그 어떤 것도 뮤지컬보다 멋질 수 없어!" 30일까지.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