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중장년층의 구직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몰리는 자리는 주로 경비, 청소직. 이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로도 입증된다. 취업 포털 워크넷의 2018년 구직 건수를 분석한 결과, 50대와 60대 구직자의 희망 직종 1위는 경비·청소 관련직이었다. 낮은 진입장벽 등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들과 달리 관심사를 파고들어 경쟁력을 키우고, 돈도 버는 중장년들이 있다. 이들은 취미가 같은 또래와 공부 모임을 꾸려 전문성을 강화하고 나서 강연을 통해 수입을 얻는다. 특히 '드론레크리에이션커뮤니티'와 '자연에서 배우는 생태체험 강사 모임' 회원들은 재능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드론레크리에이션커뮤니티’(왼쪽)와 ‘자연에서 배우는 생태체험 강사 모임’ 회원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자기계발에 나서고 있으며 그간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강사로도 활약 중이다.

◇더해진 지식만큼, 드론 실력도 '훨훨' 날았다

"매주 목요일 두 시간씩 모여 드론을 공부합니다. 오프라인 모임 날 외에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계속 정보를 주고받으니 사실상 거의 매일 공부하는 셈이죠. 다들 얼마나 열정적인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니까요(웃음)."

강호식(63) 드론레크리에이션커뮤니티 리더가 말했다. 방송사 광고기획부에서 일했던 강씨는 퇴직 후 작년 9월부터 드론레크리에이션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스터디 모임의 주요 멤버는 강씨를 포함해 김도희(57), 손승현(58), 윤영란(56), 최현주(51)씨 등 다섯 명.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인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떠오르는 드론 기술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모임을 꾸리게 됐다.

최씨는 "남은 생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더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며 "그동안 시간 여유 없이 살았던 내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었던 셈"이라고 했다. "관심사가 같은 사람과 공부하면 동기부여가 강해지고 중장년층이 받는 사회적 고립감도 해소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는 같이 하는 공부를 택했어요."

다섯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드론 조립, 비행 원리, 조종법, 항공 촬영법 등을 하나둘 익혀 나갔다. 책만 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유선생' 유튜브의 도움을 얻었고 드론 관련 업체의 시설을 견학하거나 드론 전문 카페를 찾아가 보는 눈을 넓히기도 했다. 손씨는 "혼자 공부했다면 아는 기술만 계속 반복했을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니까 수준 높은 기술에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다 함께 3주간 공들여 드론을 360도 회전시키는 기술에 성공했을 때는 마치 내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평생학습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줬다. 그간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강사료를 받고 강연을 하거나 무료로 재능기부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작년에는 서울 신정여자상업고등학교와 남강고등학교 등에서 직로직업체험교실을, 서울 청년창업페스티벌과 인천 두레마루축제 등 각종 지자체 행사에서 드론 체험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올해는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와 서울 영등포, 노원50플러스센터에서 드론레크리에이션 입문 과정 강의를 진행했다. 이 중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는 수강생들의 호응도가 높아 추가 강의까지 개설했을 정도다. 5060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 덕분이다. 손씨는 "재능을 나누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뭔가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손씨뿐이 아니었다. 다른 회원들도 배움의 열정에 불이 붙었다. 윤씨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 달 전부터 IoT(사물인터넷), 3D 프린터 기술도 배우고 있다. 공부가 또 다른 공부를 낳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씨의 경우 내실있는 강의를 진행하고자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강사 관련 강의를 꾸준히 듣는다. 이달 내로 커뮤니티 멤버들과 드론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 위해 영상 촬영, 편집 공부도 열심이다.

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중장년층에게 자신들처럼 또래와 함께 취미생활을 즐길 것을 권했다. 김씨는 "우리 세대는 대부분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지원하느라 자신의 취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며 "지금까지 안 해본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고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지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씨는 "지자체에서 5060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 중이기 때문에 집 근처 노인복지관, 주민센터만 방문해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에만 있기보다는 한번 나가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삶의 활력도 얻고 인생 후반전에 나아갈 방향을 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함께 전단 제작해 강사 일자리 구하기도

작년 10월 만들어진 '자연에서 배우는 생태체험 강사 모임'은 8명의 회원으로 이뤄졌다. 강순심(62), 곽윤희(57), 김영선(61), 안경심(51), 전금숙(60), 정현화(54)씨 등이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수학적 요소를 접목한 생태 수업을 펼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는다. 예를 들어 식물의 잎을 보며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에게 도형이나 각도 등을 알려주는 식이다.

안씨는 "만난 횟수보다는 한 번 모일 때 얼마나 질적으로 유익한 활동을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심도 있게 공부하며 역량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숲에 가서 모의 수업을 해보고 학생들의 이해를 도울 교구를 제작한다. 때로는 독서 토론도 벌인다. 최근에는 창의적인 사고 방법을 전해주는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강씨는 "450쪽에 달할 정도로 양이 많았지만 집에서 열심히 밑줄까지 그어가며 완독했다"며 "이후에 모임에서 각자가 정리한 내용과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옆에 있던 안씨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고 회원 간의 끈끈함도 커졌다"고 덧붙였다.

배운 내용을 토대로 구로푸른학교지역아동센터, 신광지역아동센터, 난지한강공원수변생태학습센터 등에서 봉사활동도 벌였다. 수입을 얻기 위한 구직 활동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교육 내용을 적은 전단을 손수 만들어 지역 도서관에 붙이는가 하면 일일이 수목원, 지역아동센터 등에 전화를 돌려 프로그램 홍보를 펼쳤다. 그 결과, 오는 10월까지 궁더쿵어린이집 등에서 유아와 초등생을 대상으로 생태수학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

김씨는 "각자의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스터디 모임을 이뤄 활동하면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따로 없는 중장년층은 스터디 모임을 갖고 싶어도 장소 대여료, 커피 값이 부담될 수 있어요. 이럴 때는 지역에 커뮤니티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저희는 서울시에서 약 5개월 동안 5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받았고 모임방도 무료로 제공받았어요."

정씨는 "활동비를 더 많이 지원해주는 프로젝트 공모전도 있다"며 "모임하는 장면을 그때그때 사진으로 찍어두고 내용도 잘 기록해둬야 뽑힐 가능성이 높다. 이 지원금으로 역량 강화에 필요한 강사 초빙비, 시설 견학비 등을 충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