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유일한 대학원 재정지원 사업인 두뇌한국21(Brain Korea 21·BK21) 사업이 올해 시행 20년을 맞았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원을 육성하고,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시작한 사업이다. 사업 시행 후 대학원 입학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연구의 질보다 논문의 수에 집착하는 연구풍토를 조성한 부작용도 지적받고 있다.
정부는 내년 9월 4단계 BK21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BK21 사업으로 지원한 금액이 4조원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 관심이 뜨거운 상황. 정부가 실시한 지난해 4단계 정책연구에선 4단계 사업 명칭을 우선 'BK21포(Four)'(가칭)로 정하고 연구력 강화를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예산지원을 일부 연구중심 대학원으로 한정하겠다고 밝혀 지방대를 중심으로 연구실 고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BK21 사업을 돌아보고, 4단계 사업의 쟁점과 과제를 짚어봤다.
◇'서울대 키우기'로 시작… 인력양성했지만 연구 풍토는 악화
BK21 사업 1단계(1999~2005)는 '선택과 집중'을 원칙으로 이뤄졌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형성한 소수의 대학만 선택해 투자를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에만 전체 지원금의 40%이상이 쏠려 서울대 지원사업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후 7년 단위로 진행한 사업에서는 이를 의식해 지원 대상을 전국 대학원으로 분산했다. 2단계에서는'지역 우수 대학원 육성사업'을 둬, 지역 대학원이 선정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3단계에서는 사업유형별 예산의 35%, 사업단·팀의 45%를 지방대에 배정하는 '지방대 쿼터'를 적용했다.
3단계에 걸친 사업을 진행하면서 당초 사업이 목표했던 석박사급 인력 양성은 충분히 달성했다는 평가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BK21 사업이 시작하던 1999년 석사와 박사과정 재적학생 수는 각각 17만5849명, 2만8924명이었다. 반면 지난해는 각각 24만7482명, 7만4750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학원 진학의 경제적 부담도 줄었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이규린(가명·25)씨는 "매달 장학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BK21 사업 수행 여부는 대학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K21 사업이 없었다면 부족한 연구비와 연구실 운영비를 메우려고 더 많은 과제를 따기 위해 경쟁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자도 있다. 논문의 수를 중시하는 평가지표 때문에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연구 풍토가 형성된 것이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우리나라 교수들의 가짜 학회 무더기 참여도 BK21 사업의 양적평가가 배경이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서울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의 박사 수료생인 장경윤(가명·36)씨는 "실적을 위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논문을 쓰는 일도 만연한다"고 토로했다.
◇교육부 입에 오른 '선택과 집중' 방향… 찬반 논란 거세
이러한 비판에 따라 내년 시작할 BK21포는 양적평가를 축소하고 정성평가를 도입한다. 새로운 평가는 연구자가 선정한 대표적인 연구 1~2건을 전문가 패널이 검토하는 방식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학원이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사업의 전체 방향은 이른바 '스타 대학원'을 양성하는 게 유력하다. 1단계처럼 소수의 대학원에 지원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 방향을 다시 살리겠다는 얘기다. 교육부의 정책연구진은 QS 대학평가 100위 내 10개 대학을 기른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지원단위를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과 단위의 사업단과 교수 3인 이상의 소규모 연구집단인 사업팀으로 나눈 것을, 사업단으로 일원화하는 방향이다. 학과 교수 참여 비율도 현행 70%에서 80%로 높일 것을 제시했다. 선정권역을 전국과 지방 구분없이 단일권역으로 바꿔 지방대 쿼터를 없애는 방안도 있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양질의 인력이 포진해 연구 경쟁력을 이미 갖춘 수도권의 명문대가 지방대보다 참여하기 쉽다. 이런 내용의 정책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현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연구력 제고를 요구한 학자들은 반기는 모습이다. 그간 BK21 사업이 지나치게 '나눠먹기' 사업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BK21 사업이 처음 시행될 당시의 의도는 서울대 등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을 키우겠다는 것"이라며 "지원을 이곳저곳 나눠서는 효과가 없으므로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충북대 창의융합교육본부 교수는 "연구중심대학을 키우고자 한다면 여건을 갖춘 대학만 지원하는 게 타당하다"며 "기존 사업의 소규모 연구 지원은 다른 사업을 통해 규모를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대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소규모 사업팀을 중심으로 참여해온 지방대의 불만이 커졌다. 정책연구진의 의도대로라면 사업 탈락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송진규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정책연구진의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지원을 받는 거점 국립대 중 7할이 지원을 못 받을 것"이라며 "지방 학계의 발전을 막고 사업 지원조차 못 하도록 문턱을 높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지역학문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겸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BK21 사업을 기반으로 지역의 특성에 맞는 충청학, 기호학, 백제학 등 지역학문을 발전시키고 있다"며 "전국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지원한다면 지방대가 배제되고 이로 인해 지역학문의 입지가 좁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장의 논란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기본계획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달 28일과 10월에 두 번의 공청회를 진행하고, 12월 기본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