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전이 3일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세 안(案)을 내놨다. 여름철 에어컨 전기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다. 4일 국무회의에선 2040년까지 태양광·풍력 등 재생 전력 비율을 30~35%까지 늘린다는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다. 2017년 태양광·풍력 전력 비율은 1.6%인데 이걸 30~35%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한다.

2016년 12조원에 달했던 한전 영업이익은 작년 2080억원 영업손실로 돌아섰고, 올 1분기 영업적자는 무려 6299억원에 달했다. 한전이 이익을 내고 있다면 국민 전기료를 깎아주는 것에 박수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적인 적자를 보고 있는데 정부가 전기료 인하를 강제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는 그 돈을 메워줘야 한다는 뜻이다. 누진제 완화·폐지로 인한 한전 추가 부담은 1910억~2980억원에 달할 거라고 한다. 한전 적자와 추가 부담을 메워줘야 하는 '그 누군가'는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 세금으로 한전 재정 적자를 메워주면 국민은 내려간 전기료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된다. 조삼모사와 같은 것으로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 전기료는 2017년 기준 �당 125원으로 EU 국가 평균 263원의 47% 수준밖에 안 된다. 상당 부분 원자력발전소가 생산한 전기 덕분이다. 반면 재생 전기 비율이 35%에 달하는 독일은 �당 389원으로 EU 국가 중 최고다. 한국도 독일처럼 태양광·풍력 비율을 35% 이상으로 늘릴 경우 전기료를 대폭 인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당분간 전기료 인상은 없고 2030년까지 10% 약간 넘는 인상이면 충분하다고 하고 있다. 유권자가 싫어할 얘기는 하지 않으려다 보니 억지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한전 적자는 탈원전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한다. 원전 가동률은 한때 95%를 넘는 적도 있었는데 작년엔 65.9%였다. 대통령도 체코에서 자랑했지만 원전은 40년간 특별한 사고 없이 안전하게 가동돼왔다. 그런데 가동률을 20~30% 떨어뜨린 것이 탈원전과 관련 없다면, 원전이 정권 바뀐 것을 스스로 알아채고 고장이 자주 나기 시작했다는 것인가.

탈원전의 피해는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았다. 지금은 고리 1호·월성 1호기가 폐쇄됐고 나머지 23개 원전의 가동률을 떨어뜨린 수준이지만, 탈원전 정책이 고수된다면 2023~2029년 사이 고리 2·3·4호, 한빛 1·2호, 월성 2·3·4호, 울진 1·2호 등 10기가 폐쇄된다.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탈원전의 산업 피해와 국민 부담 증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