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에는 '소형 크레인 사용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 현수막을 걸기 위해 타워크레인 조종석으로 올라간 노조원은 노조 집행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내려오지 말라는 방침을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노조원이 투입된 다른 건설 현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부 현장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이 출동했다.

양대 노조가 타워크레인 파업을 예고하면서 전국 건설 현장이 마비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공사 현장 일자리를 두고 서로 싸우던 양대 노총이 '소형 타워크레인'이라는 '공통의 적'을 만나자 국민 재산권을 볼모로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건설 현장, 대체 인력 구해도 못 써

타워크레인 노조 파업으로 전국 건설 현장은 비상이 걸렸다. 타워크레인은 건축물 골조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골조가 올라가야 내부 설비 공사를 할 수 있다. 결국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고층 건축물 공사는 '올스톱'인 셈이다.

민노총 건설노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총파업" -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의 무기한 총파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이번 파업에 동참함에 따라 전국 건설 현장 80% 정도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사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대체 인력과 이동식 크레인 등 장비를 구해오는 비용이 들고, 공사가 늦춰지면 건설사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 지체 보상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파트의 경우 지체 보상금은 곧 수익성 악화로 연결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남은 공사 기간에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보상금을 내지 않기 위해 공사 속도를 높이게 되고 부실 공사 가능성이 커진다.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까지 간다.

전국 약 150곳의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A건설사는 오늘부터 80%에 해당하는 120개 현장이 멈춰 설 것으로 보고 있다. 파업에 대비해 대체 기사를 구한 현장은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체 기사를 구한 현장조차도 대체 기사를 실제로 투입할지, 투입한다면 언제 할지 아직 검토 중이다. A사 관계자는 "대체 기사를 현장에 투입할 경우, 노조원들을 동원해 물리력을 행사하겠다고 노총이 경고하고 있어 고민이 많다"며 "우리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쓰지도 않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C건설사 관계자는 "고공 농성 중인 일부 노조원 사이에서는 파업에 동참하고 싶지 않지만 일자리를 계속 얻으려면 집행부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동참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노조 '갑질'이 소형 크레인 확산시켜

건설업계에서는 타워크레인 노조가 오랜 기간 지속해온 '갑질'이 소형 크레인의 확산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양대 타워크레인 노조가 건설 현장에서 자기 노조원 고용을 강요하며 공사를 중단시키는 등 사측을 괴롭히자 사측이 해법으로 (비노조원이 조종할 수 있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더 많이 쓰게 된 것"이라며 "횡포를 부리던 노조가 이제 그 돌파구조차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측이 주장하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통계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양대 노조가 이번 파업의 명분으로 들고나온 임금 인상도 과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노조 측은 기존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 기본급 약 293만원을 약 320만원으로 9%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자신이 소속된 크레인 장비 전문 회사로부터 받는 월급과 별도로 하도급 업체로부터 수고비 명목으로 비공식 수당인 '월례비'를 300만~1000만원씩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체들은 노조의 월례비 요구 때문에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목소리가 커진 노조가 제 밥그릇만 챙기며 막무가내식 실력 행사로 국가 주요 산업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정부는 노조에 끌려다니다가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