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일이란 개성의 주장일 것이고 개성은 인간성의 교양에서 더 빛나는 것 같다. 내가 ○○○ 형을 존경하는 것은 아름다운 그의 인간성이요, 그의 예술이 개성의 주장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의 거장 김환기가 이토록 애정을 표한 화가는 누구일까?
'신비적 상징주의 화가'로 불리는 천병근(1928~1987)의 첫 유작전이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5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유화 50여 점, 수채화·드로잉·판화 60여 점이 소개된다. 작고 32년 만에 열리는 전시를 위해 유족 측은 '천병근 유작전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전시는 이후 제주 서귀포 소암기념관으로도 이어진다.
민화 속 까치와 호랑이를 서양 누드와 병치한 초현실주의적 회화 '여인과 호랑이'(1983)에서 엿보이듯, 그는 민속성의 현대적 재해석에 몰두했다. 김환기는 1955년 천병근 작품평에서 "그의 예술은 향토적인 냄새가 강렬하다. 이 향토적인 것―우리가 세계 미술에 들고나갈 것은 이것"이라 썼다. 이번 전시에는 김환기가 천병근에게 보낸 편지도 처음 공개된다.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한 그는 1947년 귀국해 미술 교사로 지내다 1954년 첫 개인전(목포)을 열었고, 이후 서울과 파리·LA 등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파벌 및 부패 등으로 비판받던 국전(國展)에 반기를 들고 출범한 제1회 조선일보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도 참가했다. 당시 출품작 '무제'(1957)처럼, 하나의 색조에 갇히지 않는 그의 작품은 별과 달, 새, 눈동자 등 여러 조형과 기하학적 배경의 시적 조화를 이룩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서적 그림을 제작하며 한국적 종교 미술 구축에도 획을 그었다. 초기작 '삶'(1953·사진)은 한복을 입고 투박한 손으로 기도하는 남녀를 담고 있다. 캐나다 웨스트데일 합동교회가 소장하고 있던 이 그림은 유족 측의 삼고초려 끝에 지난 4월 영구 귀국할 수 있었다.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