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주총장 점거 닷새째…주총 장소 긴급 변경
현대重 "공권력 투입해달라"...경찰 4200명은 '현장 대기'만
노동계 불법에 '약한' 공권력 또 도마
경찰 "입건 노조원 無…추후 채증자료로 수사"
현대중공업이 31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분할안을 승인했다. 회사분할을 반대하는 현대중공업 노조 등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닷새째 주주총회장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자 현대중공업은 주총장을 긴급 변경한 끝에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현대중공업 측은 "점거 농성으로 주주총회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변경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등 500여 명은 지난 27일부터 주총장과 주변을 불법 점거해왔다. 울산지방법원은 같은 날 회사 측의 ‘주총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주총장 점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지난 30일에는 현대중공업 측이 낸 부동산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노조원들에게 점거 중인 주총장소를 회사 측에 넘기라고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은 법원 결정을 토대로 경찰에 거듭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지난 29일 울산 동부경찰서에 퇴거조치 요청을 하는 등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시설물 보호와 노조원 퇴거 요구했다. 하지만 현장에 배치된 경찰병력 4200여명은 대기만 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지난 27일에는 현대중공업 본관 진입을 시도하면서, 회사 경비원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두고 현 정부의 최대 지지세력 중 하나인 민주노총에 대한 공권력의 눈치보기가 또다시 재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닷새째 무단점거에도 경찰은 '수수방관'
당초 현대중공업은 이날 오전 10시에 회사분할안 결정을 위한 주주총회를 울산 한마음회관에서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한마음회관을 점거하면서 결국 주총을 열지 못했다. 지난 며칠간 노조원 2000여명이 주총장 입구뿐 아니라 길목 앞에 오토바이 수백 대를 동원해 '장벽'을 만들며 봉쇄했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법인분리반대' '생존권 사수' 등이 적힌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조합원 수백명이 입구를 에워쌌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적법한 법절차에 따라 경찰에 퇴거 요청을 여러번 했지만, 노조원들의 위법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법이 사라진 상황에서 공권력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주총장을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주총장 일대를 지나던 일부 시민이 노조원에게 ‘불심검문'을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30일 노조원들은 한마음회관 후문 버스 정류장을 지나던 남성 두 명을 붙잡고 신원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두 남성은 동네 주민으로 확인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하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같은 날 울산지법 집행관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고시문을 붙이기 위해 한마음회관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10여명은 집행관을 둘러싸고 있을뿐, 법 집행을 막는 노조원들을 향한 중재(仲裁)의 노력도 없었다. 침묵하는 경찰을 사이에 놓고 노조원들은 법집행관을 향해 "꺼져라" "나가라" 고성을 질렀다.
결국 이날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 장소를 울산대 체육관으로 변경했다. 총회 시간도 기존 오전 10시에서 오전 11시10분으로 변경했다. 법원에서 주총이 불가피한 사유로 열리지 못할 거라 판단해 주총 시간과 장소를 변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한마음회관을 점거하던 민주노총은 "불법적 주주총회는 무효"라고 반발했다. 이날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은 입장문을 내고 "주주들의 자유로운 참석조차 보장되지 못한 주주총회는 결코 적법하다고 볼 수 없고, 위법한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안건 역시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노조 "공권력 투입하면 총파업"…경찰은 "경찰권 행사 최대한 자제"
점거 첫날 1000여 명을 배치했던 경찰은 임시주총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민주노총 노조원들을 고려해 경찰병력 규모를 4200여명까지 늘렸다. 이들은 현장에서 온종일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퇴거 집행에 대해서는 집행 필요성과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당시에는 현장에서 퇴거 집행에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경찰 측은 집회 현장에 마련된 확성기를 통해 "안전하게 집회가 진행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질서 유지를 바란다"며 "경찰권 행사는 최대한 자제할 것이니 대화 경찰관을 찾아달라"고 방송했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쇠파이프와 가연성 물질인 시너등이 나왔다. 지난 28일 밤 울산 본사 밖으로 나가려던 조합원 승합차에서 20L(리터) 시너 1통과 휘발유 1통, 쇠파이프 39개가 회사 보원 요원에게 발견됐다. 도주를 막는 보안 요원을 차에 매단 채 150여m를 달리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차량 발전용 등 점거 현장에서 쓸 비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노총 측은 오히려 "경찰 등 공권력이 투입되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8시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마음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가 주총을 강행하고자 경비 용역과 경찰 공권력을 투입하면 현대차지부를 비롯한 금속노조 울산 본부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도 "현대중공업 노조가 침탈을 당한다면 파업을 하겠다"며 "공권력이 농성장을 향한다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총파업에 돌입하라는 비상대기 지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8일 노조 간부 등 23명이 불법 파업 및 폭력 혐의로 고소된 것 이외에는 아직 별도로 입건된 노조원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 현장 채증 자료를 분석해 순차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