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빙과업계에는 4·19부터 8·15 사이에 또 한 계절이 있다. '아이스크림 성수기'다. 해태제과와 롯데제과, 빙그레는 한 달 전 아이스크림 공장 풀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아이스크림은 1970년을 경계로 둘로 나뉜다. 60년대까지는 '아이스케키(하드)' 시대였다. 1970년 4월 부라보콘이 등장하면서 현대적 브랜드 아이스크림 역사가 시작됐다. 유제품 원료에 공기층이 들어간 부드러운 콘아이스크림은 처음이었다. 영어가 낯선 촌로(村老)들은 '소뿔 아이스케키'라 불렀다.

'아무튼, 주말'이 아이스크림 50년을 앞두고 3대 아이스크림을 무대로 불러냈다. 해태 부라보콘과 롯데 월드콘, 빙그레 메로나다. 경험과 추억,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에 인격을 부여했다. 부라보콘은 70년생 여성, 월드콘은 86년생 남성으로 잡았다. 92년생 메로나는 중성적 느낌이 강했다.

'국민 아이스크림'은 누구

부라보콘은 출시 당시 20원으로 다른 제품(5원)보다 4배 비쌌다. 2018년까지 47억개(누적 매출 1조7000억원)가 팔렸다. 국민 1인당 90개씩 먹은 셈이다. 판매된 부라보콘을 모두 연결하면 지구를 26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부라보콘=(시계를 보며) 12시에 만나자고 그토록 노래를 불렀거늘….

월드콘=(뛰어오다 머리 매무시를 가다듬고) 누나, 살짜쿵 늦었어요. 빙과 1등이라 행사가 좀 많아서(월드콘은 나온 지 10년 만인 1996년부터 아이스크림 시장을 제패했다. 지난해 매출은 800억원).

메로나=굿 애프터눈! (선글라스를 벗으며) 하와이에서 서핑하다 왔어요. 시차 적응이 안 되네(메로나는 해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 아이스크림. 지난해 미국·캐나다·브라질 등에 140억원어치 수출했다). 둘이서 만나자더니 셋이네요.

부라보콘=막내야, 오늘은 얼굴 붉히지 말자.

월드콘=누나 패션은 오늘도 하트(♡)네. (메로나에게) 넌 멜론 아니랄까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린(green)이고.

메로나=별(☆)말씀을요. 제가 좀 이국적이잖아요. 한국은 시장이 좁아서….

월드콘=(눈을 흘기며) 누군 자랑할 게 없어서 안 하나.

부라보콘=어허, 국내 1등과 해외 1등, '국민 아이스크림' 앞에선 투닥거리지 말자. 너희가 기저귀 차기도 전 일이지만, 유신(維新)이라고 들어봤나? IMF 외환 위기 땐 거의 죽다 살았지. 1972년 남북 적십자회담에선 최고 인기 아이스크림이라고 북측 대표단에 나를 줬는데 "이거 미제 아니냐?" 소릴 들었고.

"애인의 키스와 같다"

1900년대부터 여름만 되면 경성 시내에 빙수점(氷水店) 간판이 걸렸다. 겨울에 한강에서 채빙해 저장해둔 얼음이었다. 1930년 6월 8일 자 매일신보는 '아이스크림은 20세기의 청량제로 애인의 키스와 같다'고 했다. 6·25 이후 도시에선 암모니아로 냉동한 아이스케키를 파는 가게가 늘어났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메로나=(월드콘의 무릎 아래를 보며) 선탠인가요?

월드콘=초콜릿이야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을 때 섭섭해하지 말라고 준 디저트지(웃음). 인기가 높아지니까 누님이 따라 했고. 초콜릿양으로는 저를 못 당할걸요.

부라보콘=한 시대의 연애 풍경을 이 몸이 바꿨단다. 겨울에도 데이트용 아이스크림을 즐긴 건 부라보콘부터니까.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여쭤봐. 왜 12시인 줄 아니? 아이스크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간이 오후 1시였는데 CM송 작사가에겐 12시가 더 매력적이었대. 시침과 분침이 포개지는 시간이니까.

메로나=추억은 그만 파시죠. 저는 요즘 일상 풍경까지 바꿨어요. 메로나는 수세미, 칫솔, 티셔츠, 슬리퍼로도 나왔습니다.

부라보콘=기네스북은 알지? 2001년 기네스북에 오른 한국 최장수 아이스크림이 뭔지 검색해 봐.

월드콘=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88올림픽 직전에 출생한 저는 사이즈(크기)부터 달랐어요. 누님보다 1.5배 컸지요. 아이스크림 위에 견과류 뿌리고 다시 초콜릿으로 고급스럽게 장식했습니다. 바삭한 과자가 눅눅해지지 말라고 안에 초콜릿 코팅까지….

부라보콘=(말을 자르며) 글쎄, 넌 홀쭉하고 난 우아했지. 가까이 들어와 봐. 요샌 나랑 키 차이도 별로 없더구나(245㎜로 출시된 월드콘은 현재 220㎜로 길이가 줄었다. 하지만 용량은 10㎖ 더 늘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으로 해장을?

메로나는 영어로 'Melon Flavored Ice Bar'다. 멜론 함량은 얼마나 될까. 멜론 과즙 0.1%였다. 처음 나올 땐 멜론 맛과 향만 내면 됐기에 아예 안 들어 있었다. 2009년 법이 바뀌면서 달라졌다. 바나나맛 우유에도 이젠 바나나 과즙이 소량 들어가듯이. 아이스크림 한류(韓流)가 있다면 메로나 차지다.

메로나=우리 공통점이 뭔 줄 아시나요?

월드콘=여름에 인기 있는 빙과이고 폭염이면 더 불티나고.

부라보콘=너나없이 잘나서 팬덤이 있지.

메로나=땡! 모두 봄에 태어났어요. 숙명이지요. 성수기에 잘 팔려면 봄에 출시해 광고를 집중해야 하니까.

월드콘=외국물 몇 모금 먹더니 똑똑해졌네.

메로나=당근이죠. 아니, 멜론이죠.

월드콘=유머 감각은 아재구나. 참, 넌 멜론 맛이 아니라 참외 맛이라는 루머가 있더라?

메로나=당시엔 멜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 과일이 아니었어요. 수입 과정에서 맛도 달라졌고요. 개발할 때 참외 맛을 참고했을 뿐이에요. 수십 가지 시제품을 만들면서 멜론의 진한 맛과 부드러운 속살을 재현했지요.

월드콘=누나, 그 옛날 아이스케키 장사꾼이 팔다 지치면 "아이스케키~ 얼음과자~"를 "아죽겠따~ 얼른가자~"로 바꿔 외쳤다는 전설이 사실이야?

부라보콘=됐고. 모처럼 모였는데 단체 사진이나 찍자. 하나, 둘, 셋, 부라보!

최근 아이스크림 트렌드는 저열량·저용량이다. 용량이 비슷해도 칼로리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메로나는 130㎉, 스크류바는 85㎉다. 가격은 제각각이다. 편의점에서 부라보콘과 월드콘은 1800원, 메로나는 1000원이다. 1+1 행사를 하면 더 싸진다. 지난 28일 서울 연세대 앞 노마진 아이스크림 가게(도매상)에서는 브랜드와 관계없이 콘은 800원, 하드는 400원을 받았다.

아이스크림 포장지에는 제조 일자만 찍혀 있다. 롯데제과에서 빙과를 개발한 지 20년 된 윤제권 팀장은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이 없다"며 "싸게 판다고 해서 오래됐거나 변질될 위험이 높은 건 아니다. 정상 제품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스크림에는 유지방이 많아 과음한 다음 날 먹어도 좋다"고 했다. 물론 전기를 아끼려고 일부 영세 수퍼 등에서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 아이스크림까지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음식 문화를 연구하는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국 아이스크림 역사에서 굵직한 사건은 1970년 기업형 브랜드 아이스크림이 등장한 것과 1986년 미국 배스킨라빈스의 상륙"이라며 "간식이나 별식을 넘어 서양처럼 후식 자리까지 꿰찬다면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