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하루 앞둔 현대중공업…노조, 나흘째 점거농성
민주노총 조합원 6500여명 울산에 총집결
주민들 "전쟁 날 것처럼 무섭다"
경찰도 4200여명 배치...사측은 "주총 예정대로"
"집행관분, 여기 농성장 바깥으로 나오세요!"
30일 오후 4시쯤 울산 동구 전하동 한마음회관에 차려진 현대중공업 노조 농성장 입구. 그늘막에서 쉬고 있던 노조원들이 "뭐야" "누구야" 하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모인 노조원들이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울산지법에서 나온 집행관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결정문을 붙이려 농성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집행관을 막아섰다. 노조 한 간부는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되돌아 가주세요"라고 했다. 경찰 10여명이 대화를 나누는 집행관과 노조원을 둘러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10여분 두 사람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꺼져라" "나가라" 하는 고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집행관은 결정문을 붙이지 못한 채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서 가는 집행관을 향해 "마음대로 해라. 끌어내든지, 잡아가든지" "우린 여기서 죽는다" 는 말도 들려왔다. 서울과 부산, 대구, 구미, 창원 등 전국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던 시각이었다.
현대중공업이 물적분할(법인분할)을 결정짓는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이날. 주총장인 한마음회관 주변은 온종일 긴장감이 맴돌았다. 경찰은 전날 2000여명에서 4200여명으로 두배 이상 늘었고, 노조원들도 점점 늘어 6000여명에 달했다. 인근 상인 박모(56)씨는 "꼭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무섭다"며 "학생들도 오가는 주택가에서 이러는 게 세상에 어디있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낮 12시30분쯤 법원이 현대중공업 측이 낸 ‘부동산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농성장에 전해졌다. 노조가 점거를 풀고 회사 소유의 한마음회관을 되돌려주라는 법원의 명령이었다. 몇몇 노조원들이 휴대폰으로 이 뉴스를 접하자 "법원이 우리보고 나가란다" "그래 한번 내보내봐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마음대로 해라"면서 비웃는 사람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현대중공업 측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 직후 곧바로 법원에 명도 집행 신청을 했다. 법원이 집행에 나섰을 때 노조가 점거를 풀지 않으면 법원은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31일 오전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실제 집행이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때부터 노조원들은 한층 예민해진 모습이었다. 오후 4시 30분쯤 한마음회관 후문 쪽 버스 정류장에서는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 두명이 지나다가 노조원들에게 붙잡혔다. 노조원들은 우르르 모여들어 "정체가 뭐냐, 신분을 밝혀라"고 다그쳤고, 두 남자는 어쩔줄 몰라했다. 한 노조원은 "회사가 고용한 경비 용역 직원으로 보여 붙잡았는데 그냥 주민이어서 놓아 줬다"고 했다. 사회자는 이따금씩 마이크를 들고 "지금 현대중공업 본사 체육관에는 용역 경비 1000명이 모여 있다고 한다"며 "내일(31일) 새벽 용역 경비 침탈이 예견되고 있다"고 외쳤다.
언론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조 측이 만든 취재 완장이 없으면 휴대폰만 꺼내 들어도 "사진 찍지 말라"며 소리쳤고, 한마음회관 근처에 다가가면 붙잡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한 취재기자는 노조원들에게 휴대폰을 뺏겨 찍었던 사진을 모두 지우고서야 돌려받았다.
"대우조선지회 동지들이 오셨습니다." 오후 5시 집회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도착할 때마다 "와~" 하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단체마다 깃발을 앞세우고 들어오면 미리 모인 노조원들은 나팔로 화답했다. 집회가 시작될 때는 현대중공업 노조 1000여명에 곳곳에서 온 5500여명이 합류했다. 집회에서는 "법인분할 박살내고 생존권을 사수하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노동자들 다 죽는다. 법인분할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노조원들은 "밤을 새더라도 공권력과 사측의 경비 용역 투입을 막아 주총장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노조원들처럼 경찰도 모여들었다. 서울·인천·부산·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64개 중대, 4200명이 동원됐다. 전날과 다르게 모든 경찰들이 보호구를 착용하고 방패를 들었다. 119구급차와 소방차, 구급대원들도 농성장 주변에서 대기했다. 인근 대로변에는 경찰버스 수십대가 한개 차로를 차지해 중간중간 교통 체증을 빚기도 했다.
노조 측의 강력한 반발에도 현대중공업은 31일 이곳에서 주주총회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