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유해용〈사진〉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7일 법정에서 "정의롭지 않은 수사" "총체적 위법 수사" 같은 격한 표현을 써가며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6년 2월부터 1년여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후배 재판연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 등을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은 뒤 작년 초 법원을 퇴직할 때 갖고 나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작년 9월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반출된 자료에 비밀 유지에 필요한 사항이 없어 공무상비밀누설죄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 나온 그는 "5~7분짜리 (발언을) 준비해왔다"며 검찰과 재판부에 자료를 전달한 뒤 이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사상 초유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라 검찰 역시 고충이 있었을 테지만, 정의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총체적 위법 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사법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인 만큼 수사 절차가 공정한지도 낱낱이 역사에 남겨야 한다"며 "검찰은 정의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했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영장에서 벗어난 별건(別件) 압수수색, 언론을 활용한 대대적인 피의사실 공표, 표적·과잉·별건 수사, 영장주의 위반 등"이라고 했다.
그는 "전·현직 판사들이 (재판이) 자기 일이 되고서야 기본적 권리, 절차적 권리를 따진다는 언론과 국민 질책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몸소 겪어보고 나서야 수사의 실상이 이런 줄 몰랐다는 걸 깨쳤다. 이번 기회에 디딤돌이 되는 판례 하나를 남기는 것이 제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이번 일을 겪으면서 때로는 삶이 죽음보다 더 구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며 "수사 과정에서 언론에 의해 중대 범죄자로 낙인찍혀 만신창이가 됐다. 쌓아온 모든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면서 불가역적 타격을 입었지만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만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인 심리를 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사법 농단 수사 중에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드러난 데다 고의로 중요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부분은 가볍게 말하고 검찰이 절차를 위배해 수사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