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첫선을 보인 국립발레단 창작발레 '호이 랑'은 발레로 빚어낸 전래동화 같은 작품이었다. 지극한 효심을 다룬 줄거리에 신선한 발레 안무를 결합해 어느 관객이든 두루 안을 만한 대중성을 갖췄다. 국립발레단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초연한 공연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오빠와 함께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소녀 '랑'. 어느 날 나라에 전쟁이 터지자, 오빠는 전사하고 아버지마저 전장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고민하던 랑은 남장을 하고 아버지 대신 군역에 나선다. 약한 체력 때문에 뒤처지고, 비열한 상사 '반'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지도자 '정'의 도움으로 점차 어엿한 군인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정이 그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위기가 닥친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기존 문법을 깬 창의적인 안무, 이를 돋보이게 하는 간결한 무대와 조명도 좋았다. 그러나 이 작품만의 매력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꼬집기가 어렵다. 대한제국기 언론인 장지연이 엮은 열전 '일사유사'에 등장하는 효녀 '부랑'의 이야기에서 따왔다는 줄거리는 중국 고사를 바탕으로 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1998)과 비슷하다. 원전은 유사하더라도, 새로운 시각이나 해석을 더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안무 역시 여성 무용수의 화려한 검무와 전투를 묘사한 군무 등 볼거리가 풍성했지만, 줄거리 전달에 치우쳐 정작 발레 자체를 제대로 즐길 만한 장면이 부족했다. 극 말미에 정과 랑이 추는 정통 스타일의 파드되(2인무)에서 가장 큰 환호가 나온 것은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객석이 춤에 목말랐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분명 '즐거움'이란 기준에는 모자람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적 색채가 묻어나는 발레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였다"는 제작진의 설명에 비춰볼 땐 부족함이 있다. 막이 내린 뒤에도 관객을 오래도록 붙드는 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발레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5월 31일~6월 1일 울산문화예술회관, 11월 6~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