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논설위원

소득 주도 성장론(이하 소주성)의 이론적 오류 여부를 둘러싸고 경제학계에서 논쟁이 붙었다. 서강대 경제학과 박정수 교수가 '경제가 성장한 만큼 임금은 안 올라 가계가 가난해졌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기본 전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허를 찔린 소주성 진영에서 반격에 나서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세계 11위 시장경제 대국에서 사상 초유의 정부 주도 경제 실험이 3년째 진행되고 있는데, 경제학계의 논의와 검증 작업이 미진했던 게 사실이다.

◇'임금 없는 성장' 주장은 잘못된 해석

청와대 박종규 재정기획관은 2013년 금융연구원 재직 시절 쓴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 저축의 역설'이란 논문에서 경제는 성장하는데 근로자 실질임금은 정체돼 기업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계는 가난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장하성, 홍장표 교수 등이 이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소득 주도 성장' 담론을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박정수 교수는 소주성 담론의 출발점이 된 박 기획관의 실질경제성장률, 실질임금 상승률 간 비교는 소득배분이라는 비교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당시 박 기획관은 실질경제성장률을 산출할 땐 물가 변수로 'GDP디플레이터'를 썼고, 실질임금 인상률을 산출할 땐 '소비자물가지수'를 활용했다. GDP디플레이터는 소비재뿐만 아니라 생산재, 자본재까지 포함되는 광의의 물가 개념이다. 둘 간에 격차가 있는데, 다른 물가 지표를 사용함으로써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GDP)이 1000조원에서 1100조원으로 늘어나면 증가율이 10%이다. 근로자 연봉이 10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늘어났다면 똑같이 증가율은 10%이다. 그런데 GDP디플레이터는 4%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라고 하자. 명목 GDP에 GDP디플레이터를 적용하면 실질 GDP는 6%(10%-4%)가 되고, 명목임금 상승률에서 소비자물가지수를 차감하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4%(10%-6%)가 된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경제는 6% 성장했는데, 임금은 4%밖에 안 올랐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맞는 말일까.

한 해 전 몸무게가 50㎏인 두 어린이가 있다고 치자. 한 해 동안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 증가율을 비교하자면 같은 조건에서 몸무게를 재야 한다. 그런데 A 어린이는 얇은 여름옷을 입히고, B 어린이는 겨울 외투를 입혀서 몸무게를 쟀다고 치자. B 어린이의 몸무게 증가율이 과대평가될 것이다.

박 교수가 물가 변수를 넣지 않고 2000년 이후 명목 경제성장률(연평균 4,6%)과 명목임금 상승률(연평균 4.5%)을 비교한 결과, 거의 같은 흐름을 보였다. 성장률과 임금에 같은 물가 지표(GDP디플레이터나 소비자물가지수)를 적용했을 때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즉 물가 변수를 제거하거나 같은 물가 변수를 적용하면 즉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근로자들의 임금도 올랐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종규 기획관은 "실질 GDP 산출에 GDP디플레이터를, 실질임금 산출에 소비자물가를 적용하는 것은 학계에서 통상 하는 방법"이라면서 "근로자들이 생산성이 오른 만큼 임금을 받아 갔다면 낙수 효과 실종, 수출과 내수 간 괴리, 기업 저축 급증, 양극화 심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계에선 박 교수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왜 이런 단순한 오류를 진작 발견하지 못했는지 경제학계가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조장옥 전 한국경제학회장은 "다른 물가 변수를 적용해 산출한 실질 GDP와 실질임금을 비교하는 것은 쌀과 계란을 비교하는 격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개 GDP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지수 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이후 둘 간에 큰 격차가 생겼다. 2000~2017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54.6% 증가한 반면 GDP디플레이터 증가율은 43.7%에 그쳤다. 그 이유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기술 혁신과 기업 투자에 대한 정부의 세금 감면 등으로 자본재 가격 상승은 둔화되고, 소비자 가격은 계속 올라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정수 교수는 "유가와 환율 변수도 작용하는 것 같은데, 정확한 원인은 연구를 더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분배 없는 성장' 주장도 근거 빈약

소주성 진영이 논리에서 밀리는 듯하자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소주성을 지지하는 경제학자 중 하나인 건국대 주상영 교수가 논쟁에 가세해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노동 소득 분배율'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 소득 분배율이란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 중 근로자들이 차지하는 몫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이 공식 발표하는 우리나라 노동 소득 분배율은 2000년 57.8%에서 2017년 63.0%로 꾸준히 오르는 양상을 보여준다. 기업 부가가치 중 인건비 비중이 2000년 47.6%에서 2017년 54.3%로 오른 것도 '근로자 몫이 줄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소주성 진영 학자들은 한국은행 노동 소득 분배율 지표엔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의 노동 소득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자본가 속성과 근로자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 치킨 가게 주인은 닭 튀기는 기계 등 설비투자도 하고, 닭을 튀기고 배달하는 육체 노동도 한다. 치킨 가게 주인 소득엔 자본 소득(이윤)과 노동 소득(임금)이 섞여 있다.

국민 전체 소득 중 노동 소득을 추산하려면 자영업자들의 노동 소득도 포함해야 한다. 그래서 자영업자 소득의 3분의 2나 50%를 노동 소득으로 간주해 계산하는 '조정 노동 소득 분배율'이란 지표를 새로 만들었다. 주 교수가 이런 식으로 만든 조정 노동 소득 분배율 지표를 보면 1975년 81%에서 2017년 57.7%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소주성 지지자들은 이 같은 조정 노동 소득 분배율의 하락이 가계소득 악화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박정수 교수는 "조정 소득 분배율 하락은 자영업자 소득 감소에 기인한 것이라서 이런 지표를 근거로 분배 악화를 주장해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번 논쟁을 통해 자영업자의 소득 변화를 정확히 반영하는 노동 소득 분배율을 측정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경제학계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 대다수 "소주성 이론 틀렸으니 경제정책도 바꿔야"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는 소주성 이론의 전제가 틀린 만큼 소주성에 기반한 경제정책 기조도 잘못됐다고 진단한다. 서강대 조장옥 명예교수는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2년간 밀어붙였지만,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 않았느냐"면서 "이제라도 잘못을 깨닫고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김소영 교수는 "실질임금을 끌어올리려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면서 "명목소득(최저임금)을 끌어올려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노동 소득 분배율이 악화했다는 건 학계에서 대체로 인정하는 팩트"라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한 것도 같은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전 한국경제학회장은 "박정수 교수가 소득 주도 성장론의 허점을 잘 지적했다"면서 "더 많은 논의와 논쟁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