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관료들이 예상하고 준비해온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민관이 합동해 재난을 유기적으로 극복하는 훈련을 강화해야 합니다.”
미국 '재난 대응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크레이그 퓨게이트(Fugate·사진) 전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은 14일 ALC '재난 대응의 전설이 온다' 세션에서 "재난이 점차 대형화·복합화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2017년 미국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인 FEMA 청장을 지낸 퓨게이트는 지방정부 소방관 출신으로 각종 대형 재난 현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자연재해로 그치지 않고 대규모 정전, 통신 두절, 교통마비 등의 문제와 결부되며 피해를 키웠다"고 했다. 소방 관련 부처뿐 아니라 재난과 무관하다고 여겼던 통신·교통 부처들도 평소 재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은 내 일이 아니다'라는 관료주의적 관성을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퓨게이트 전 청장은 FEMA 재직 시 '번개 훈련'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FEMA는 지방의 각 재난대응센터에 아무런 고지 없이 가상훈련 시나리오를 내린다. "토네이도로 인해 통신시설이 파괴되며 전기·전화·인터넷이 끊긴 상황에서 대응 방안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퓨게이트 전 청장은 "재난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도 대형 재난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극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공무원들에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던져주고 빨리 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재난의 정도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십 년간 재난 업무를 담당하며 기후변화로 폭염이 심해지고 산불이 빈발하는 것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도 지난달 발생한 강원도 산불과 같은 재난이 다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장소를 찾아내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퓨게이트 전 청장은 “재난 상황에선 정부뿐 아니라 해당 지역 주민들과 NGO(비영리단체)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대형 재난 발생 직후 당장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해야 하고, 평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재난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재난의 피해는 어린이를 비롯해 노인·장애인 등의 약자들에게 집중된다”며 “정부는 이들이 위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응급처치나 소방 등 기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