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6월 1일부터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최고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지난 10일 미국 정부가 2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한 보복 조치다.

중국 재정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닭고기·옥수수·밀 등 2493개 품목에 25%, 가공식품 등 소비재 1078개 품목은 20% 등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엔 5~10% 추가 관세를 매겨왔던 상품들이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은 보복해선 안 된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썼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미 무역대표부 청사 앞에서 류허(맨 왼쪽) 중국 부총리와 스티븐 므누신(오른쪽에서 둘째) 재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맨 오른쪽)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는 이미 예고된 것이기는 하지만, 미·중의 무역 전쟁이 한층 더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세계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중국 상하이 지수는 1.21% 하락했고, 한국 코스피 지수는 1.38% 내렸다.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은 2%가량 하락 출발했고, 독일 증시도 1% 이상 떨어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환시장까지 충격을 받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5원 오른 달러당 1187.5원에 마감했다. 올 들어 6.4%나 오른 것으로, 지난 2017년 1월 11일(1196.4원) 이후 2년 4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하면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 원화 약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한국무역협회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38.9%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중 무역 분쟁이 확대되면 수출 감소분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역 전쟁 종결을 바라는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미·중은 서로에게 협상 결렬의 책임을 넘기며 공방을 벌였다. 중국산 제품 2000억달러에 대한 25%의 추가 관세가 현실화되는 이달 말 1차 데드라인, 보복 관세를 아직 적용받지 않은 나머지 325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의 보복 관세가 현실화될 수 있는 3~4주 뒤 2차 데드라인까지 미·중이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 세계 경제는 G2 무역 전쟁의 장기화라는 악재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중은 지난주 워싱턴에서의 협상이 '노딜(No Deal)'로 끝난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기억해라. 그들(중국)이 우리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하려고 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우리(미국)는 (중국과의 무역 협상과 관련해) 우리가 원하는 곳에 있다. 우리는 중국에 관세를 매겨 수백억달러를 확보하게 될 것이고, 상품 구매자들은 미국 내에서 물건을 제조하거나(이상적인 상황), 아니면 비관세 국가들로부터 사라"고 덧붙였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중국이 (사전에 합의했던) 일부 약속을 어긴 탓에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재산권 및 사이버 침해 ▲기술 이전 강요 ▲관세·비(非)관세 장벽 등을 해결 과제로 지적하면서, "이와 관련한 매우 강력한 이행 조항이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관세를 계속 부과해야 하고, 어떤 후퇴도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은 보복 관세 리스트에 미국산 농축산물을 대거 포함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미국 농촌을 정면 겨냥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일제히 미국을 성토하면서 중국이 핵심 이익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은 중대 원칙 문제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중국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진창룽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경제 매체 쯔관왕(資管網)에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중국이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킹(king) 카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꼽은 첫째 카드는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 95%를 점하고 있는 희토류, 둘째는 중국이 보유 규모에서 세계 1위(1조1230억달러)인 미 국채다. 마지막이자 최대의 카드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애플의 수출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공방 와중에 커들로 NEC 위원장은 이날 폭스뉴스에서 "다음 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날 가능성이 꽤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협상은 올해 연말 무렵에야 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1년간 이어진 미·중 무역 전쟁이 수십년간 지속될지도 모르는 경제 전쟁 초기에 일어난 소규모 전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