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익숙했던 풍경을 뒤로하고 자녀와 낯선 땅에 머물며 추억을 쌓는 엄마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빠듯한 일정에 쫓겨 수박 겉핥기식으로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보단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한 도시를 들여다본다. 자녀와 해외에서 한 달 살기는 저가 항공사 증가, 숙박 공유 업체 확산, 국내 대기 질 악화 등과 맞물려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왼족부터 순서대로) 양래교·한지운·지수희·이지연씨 가족.

◇제주도로 시작해 해외까지

낯선 지역에서 자녀와 한 달을 보내는 여행 방식이 유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0년 이후 방학을 이용해 아이와 제주도에서 한 달간 체류하는 가족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국내외를 휩쓴 '킨포크 라이프(Kinfolk Life)'의 영향이었다. 킨포크 라이프는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소박한 삶을 사는 생활 양식. 더욱이 제주도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해외여행을 대체할 국내 여행지로 인식됐다.

저가 항공사 증가로 국제 항공권 가격이 낮아지고, 숙박 공유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여행사 인터파크투어가 2016~2018년 해외항공권 구매 기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해외 한 도시에 29~31일간 머무는 한국인 여행객은 2016년 대비 198%나 늘었다.

자녀의 외국어 능력 향상, 경험 축적도 한 달을 외국에서 체류하게 만드는 요소다. 지난해 5월 세 살, 다섯 살 된 아이 둘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달을 보낸 양래교(37)씨는 "최근에는 아이에게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해주려고 외국에 나가는 엄마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체류 비용 줄이려면… 부엌 갖춘 숙박시설 선택

후회 없이 한 달을 보내기 위해 경험자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해 대물 손실 배상 등 최대한 보장 범위가 넓은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라"고 추천했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는 방법도 알아두는 게 좋다. 일단 여행 성수기인 연초나 연말, 여름휴가 기간을 피해 항공료와 숙박비를 줄이도록 한다. 유아기 자녀를 둔 엄마에게 비성수기의 장점은 또 있다. 일반적으로 만 24개월 미만 아이의 항공료는 성인 요금의 10%지만, 별도의 좌석이 마련되지 않는다. 그런데 비성수기에는 기내에 빈 좌석이 많아 아이를 편히 옆 좌석에 눕힐 수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숙박 시설은 가급적 부엌을 갖춘 곳으로 선택한다. 현지에서 산 재료로 음식을 조리해 먹으면 식비를 줄일 수 있다. 올 1월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호주 시드니를 찾은 한지운(41)씨는 "일정 수의 구매자가 모이면 할인가로 상품을 파는 소셜커머스를 통해 현지 미술관, 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서도 한 달 살기로 값진 시간 보낼 수 있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자' 다짐했어도 여행지에 도착하면 아이와 많은 경험을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한씨는 "빡빡한 계획을 다 실천하려 하면 아이도, 엄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하루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아이 말로는 그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대요. 사소하더라도 아이와 새로운 공간에서 추억을 만드는 경험이 오히려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과 올해 두 번에 걸쳐 체코 프라하에서 돌쟁이 자녀와 한 달 살이를 한 지수희(36)씨도 의견을 보탰다.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해요. 저는 처음에 '여기를 언제 또 와보겠어' 하는 마음에 아이를 업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막판에는 체력이 다 떨어져 숙소에만 머물러 아쉬웠습니다."

해외에 나간 김에 자녀의 외국어 실력을 한층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라면 스포츠센터를 주목하자. 이곳에서는 거부감 없이 외국인들과 뛰어놀며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해외 한 달 살이는 시간·비용이 넉넉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씨는 "일년 치 휴가를 한 번에 몰거나 공휴일과 휴가를 붙여 '반 달 살기'를 실현하는 엄마들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36개월 아이와 태국 치앙마이로 향한 이지연(32)씨는 "한 번에 큰돈 나가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적금을 들거나 엄마들을 모아 집을 빌리는 식으로 돈을 절약해보라"고 조언했다.

또 엄마들은 '해외' 자체보다는 '아이와 한 달간 시간 보내기'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도 기존에 머물던 곳을 벗어나 자녀와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관심도가 높은 장소로 가보세요. 예를 들어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공룡의 흔적을 간직한 고성으로 데려가는 식이죠. 해외에 나가는 것 못지않게 아이에게 성취감, 만족감을 줄 수 있어요."(양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