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H해운에 해경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H해운 본사가 있는 여수를 비롯해 목포, 인천 등에 있는 지사와 관계사들이 인천해양경찰서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한 것이다. 인천해경은 H해운이 해양수산부의 '선박 현대화 지원사업'을 악용해 금융기관에서 사기 대출을 받는 등 횡령과 사기, 해운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했다.
H해운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는 강도 높게 진행됐다. 그러나 해운 업계에선 해경이 H해운을 '표적 수사'하고 있다는 뒷말이 나왔다. H해운이 도선(渡船) 사업 면허 처분 문제를 둘러싸고 인천해경 측과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압수수색이 진행된 시점은 항소심을 마치고 양측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을 때다. 한쪽에서 피고와 원고로 법정 다툼을 하는 이들이 다른 한쪽에서 수사의 주체와 대상으로 만나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영장 기각, 1년째 기소도 안 돼
인천해경은 10개월간 H해운과 주변 조선 업체, 해양수산부 선박 현대화 지원사업의 시행 기관이었던 수협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7월 H해운 대표 이모씨 등 5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H해운은 2014년 선박 현대화 지원사업에 공모하는 과정에서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방식 등으로 금융기관을 속여 36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해경은 H해운 측이 이 중 8억원을 횡령하고 6억9000만원가량을 선박 건조 외 다른 곳에 썼다는 혐의(해운법 위반)도 있다고 했다.
선박 현대화 사업은 세월호 사태 이후 노후 선박을 개선하고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해수부가 추진한 사업이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액의 이자를 지원하는 '이차(利差) 보전 사업'과 정부가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연안 여객선 현대화 펀드'로 나뉜다. H해운이 지원한 것은 이차 보전 사업이었다.
이차 보전 사업은 업체가 내항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신규 건조하거나 친환경 선박으로 개량하면 금융기관에서 빌린 대출 금리 중 2.5%를 정부가 지원한다. 사업자는 1% 안팎의 저리로 큰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해수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390억원가량이 업체에 지원됐다. 해경의 수사가 맞는 방향이라면 국민 세금이 새는 곳을 메운 셈이 된다.
그런데 수사 결과는 몇 가지 의구심을 남겼다. H해운은 3척의 배를 건조하려 했는데 문제가 된 것은 36억원의 대출을 받은 647t 차도선(車渡船)이었다. 이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배의 건조 비용을 52억원대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반면 해경은 선박 건조 비용을 30억원대로 평가했다. 애초에 배 값을 부풀려 대출을 진행했다는 게 해경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H해운이 만든 647t 배의 감정 평가액은 56억원이 나왔다. 감정 평가는 대출을 맡은 수협을 통해 진행됐다. 감정 평가 위원들과 수협, 업체가 짜고 평가를 허위로 한 것이 아니라면 해경 수사와 반대 감정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해경 측은 감정 결과가 의심된다며 관련 업체도 조사했다. 그러나 해경 관계자는 "감정 관계자가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수사를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복수의 해운업체 관계자들에게 647t 크기 차도선의 견적을 물었더니 자재 가격, 기간, 기술력 등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횡령 혐의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이차 보전에 따른 금액 지급은 회삿돈으로 공정을 한 뒤 수협이 이를 메우는 구조로 이뤄진다. 10% 공정을 마치면 그 자료를 제출한 뒤, 수협이 현장 실사 등을 통해 평가한 뒤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H해운 측은 "8억원을 횡령해 다른 곳에 썼다면 배가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수협이 돈을 지급하지 않았어야 이치에 맞는 것"이라면서 "수협으로부터 받은 돈을 수익으로 보고 경영에 사용한 것까지 횡령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법 적용"이라고 했다. H해운 이모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관할권을 이곳저곳으로 넘기고 있을 뿐 기소하지 않고 있다.
하명 수사라던 수사관
수사의 동기를 의심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H해운과 인천 해경의 악연 때문이다. 이들은 2016년부터 도선 사업 면허 변경 신청을 두고 소송전을 벌여왔다. 도선은 육지와 도서 간, 도서와 도서 간 등 비교적 가까운 해역에 사람과 물건을 운송하며 영업한다. 현행 법에 따르면 도선이 다니는 항로에 여객선이 운항하는 것은 가능하나 여객선이 다니는 항로에 새 도선이 추가돼 운항할 수는 없다.
문제는 2014년 인천 삼목도, 신도, 장봉도 항로에서 H해운이 여객운송사업면허를 따면서 시작됐다. 2015년 6월 이 항로를 운항하던 경쟁사 S해운은 여객운송사업 폐업 신고를 하고, 도선사업 면허 변경 신청을 냈는데, 해경이 승인처분을 했다. H해운이 여객선 면허를 가진 상태에서 S해운이 새로 도선 면허를 부여받은 셈이다. H해운은 S해운의 도선사업 변경 면허를 받아 준 것은 불법이라며 해경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인천해경은 S해운에 대한 면허 허가는 신규 면허 처분이 아니라 기존 도선 4척에 1척을 증선하는 변경 승인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H해운 손을 들어줬다.
수사가 시작된 것은 항소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 사이다. 자연히 H해운 측은 표적 수사를 의심한다. H해운 부사장 이모씨는 본지 통화에서 "고발 등이 없었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나온 수사관에게 인지(認知) 수사냐고 물었더니, 수사관이 '하명 수사'라고 답하더라"며 "행정소송을 한 괘씸죄로 수사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인천해경 측은 이에 대해 "수사하는 부서는 행정소송 내용을 알지도 못했다"며 "소송 탓에 불법을 발견하고도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